본격적인 춘투(春鬪)를 앞두고 대기업 노조가 변하고 있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대기업 노조가 올 임금협상을 회사에 일임하며 신뢰회복에 나서는 등 상생 경영을 추구하는 노조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발생한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및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대해 일고 있는 반성의 목소리와 맞물려 올 춘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LG칼텍스정유 노조는 최근 열린 올해 첫 임금 협상에서 임금협약을 회사측에 위임하고 노조 전임자수도 4명에서 3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 회사 노조는 정유업계로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7월 20일간의 파업으로 회사측에 600억원의 손실을 입혀 소모적인 파업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파업 주동자 23명이 해고되는 등 647명의 노조원이 징계 조치됐다. 노조측은 "노사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면서 노조가 먼저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임금 협상을 위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반도체 노조도 지난해 2조240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올해 임금 교섭 전권을 회사측에 위임했다. 기존 노조 관행대로라면 사상최대 실적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요구했을 법하다. 하지만 이 회사 노조는 최근 급격한 환율하락 등 대외적인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지자 채권단 공동 관리 상태인 회사정상화를 위해 동참하겠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비상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가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하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LG전자 노조도 4일 올해 임금인상 결정을 회사쪽에 위임하자 회사가 ‘6.6% 임금인상’안으로 화답해 ‘상생의 신노사 문화’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팬택의 경우 노조가 지난해 말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나서자 회사측이 오히려 10% 올려주기도 했다.
올해 첫 무교섭 임금 타결의 테이프를 끊은 노조는 E1(구 LG칼텍스가스)으로 10년째 무교섭 타결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동국제강과 계열사인 유니온스틸 노조도 회사측에 임금교섭을 위임, 각각 11년과 12년째 무교섭 타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STX그룹 계열의 STX에너지와 STX엔파코도 임금협상을 회사측에 넘겨 ‘무교섭 대열’에 합류했다.
80년대 말 ‘골리앗투쟁’ 등 강경 노조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지난해까지 10년째 무파업 임단협 교섭을 이뤄냈다. 특히 이 회사 탁학수 노조위원장은 1월 선박을 발주한 선주사 경영진에게 "노조가 책임지고 공기를 지키고 품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상생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올해 대기업 노사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며 "비정규직 문제 등 몇 가지 문제가 걸려 있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노동계의 전면 투쟁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