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 있으면 밖이 있고, 우리가 있으면 그들이 있다. 이쪽, 저쪽이라는 구별 짓기를 통해 세상의 사물과 삶은 그 존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구별의 도구인 경계는 서로의 소통을 막고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은 평화를 꿈꾸고 평화는 전쟁을 모색하듯이 경계로 나뉘어져 보이는 두 현상은 표면과 이면으로 한 세상 안에서 동시에 똬리를 틀고 있다.
18일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손진책 연출의 연극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는 삶에 웅크리고 앉은 비극과 희극의 동시성을 경계를 빌려 그리고 있다.
콘스탄자와 토미스라는 나라의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아톰(권성덕)과 러바나(김성녀) 부부는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넘겨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시체 24구면 석탄을 많이 탈 수 있을 거야"라며 전쟁 속에도 소박한 행복을 누리던 부부는 20년 만에 꿈만 같은 휴전을 맞이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벽을 뚫고 들어온 군인(정호붕)은 한가운데 경계를 긋고 집을 두개의 국가로 가른다. 각각 콘스탄자와 토미스 출신인 아내와 남편은 손조차 맞잡을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한다. 1953년 남과 북의 휴전이 수많은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지도록 한 부조리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는 행복해야 할 순간이 예기치 못했던 비극을 잉태하는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황망한 처지에서도 군인의 굳은 얼굴에서 오래 전 집을 나간 아들의 모습을 찾아내는 러바나의 행동은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삶의 아이러니를 나타낸다.
다양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김성녀의 호연과 원작의 치밀한 이야기 구조가 객석에 끊임없는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꾸며진 무대와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적절히 담아내는 조명, 음향효과도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기대했던 3인의 연기앙상블은 대극장 무대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죽음과 소녀’ ‘독자’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의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원작을 옮겼다. 손진책씨는 지난해 4월 일본 신국립극장 기획공연으로 이 작품을 세계 초연하기도 했다. 4월3일까지. (02)747-5161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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