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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손바닥 소설책' 2권 나와 - 현실·환상서 헤매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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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손바닥 소설책' 2권 나와 - 현실·환상서 헤매는 '나'는 누구인가

입력
2005.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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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찾은 명승지의 허명(虛名)에 실망해 터벅터벅 되돌아 걷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멋진 풍경의 느낌이 이러할까. ‘틈북스’라는 신생 출판사가 펴낸 두 권의 손바닥만 한 소설책, 서준환의 ‘파란비닐인형 외계인’과 최대환의 ‘새드마우스의 1920년대’의 뒷맛이 그러했다.

‘새드마우스…’는 처연한 느낌이다. 주인공은 30대 독신의 과학교사. 그는 자신의 원룸 거실에 미로를 만들어 두고 그 속에 ‘마이크로 마우스(로봇 쥐)’를 기른다. 쥐는 늘 분주하게 움직여보지만, 미로는 운명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쥐의 헤맴은 출구 없는 미로의 구조 탓이거나, 이미 쥐가 거기에 익숙해져 탈출의 필요를 못 느끼거나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때문일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처럼 복잡하고 처연하다. 미로 속 쥐처럼 그의 삶 역시 늘 닫혀있다. 지난 날의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는, 학교 제자 등 몇몇 인물들이 그의 폐쇄적 삶 속에 틈입하면서, 그리고 그의 ‘과거의 남자’가 끼어 들면서 소설 끄트머리에 가서야 설명된다. "널 만났을 때, 난…, 나 스스로를 1920년대를 겪는 과학자 같다고 느꼈어." 그는 스스로 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수긍할 수도 없었던 성정체성(동성애)의 혼란을, 그 시대 뉴턴 이래의 고전물리학이 추구하고 성취했던 절대진리의 세계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1927년)로 인해 일거에 무너져내릴 때 느꼈을 과학자들의 혼란과 당혹감에 비유한다.

때로 우리는 자신에게서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 그 순간 우리의 삶은 미로처럼 변하고 자아는 쥐처럼 방황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과 쥐의 미로 탈출을 도모하는 방식, 그 결심에 이르는 방식을 엿보고싶지 않은가.

‘파란비닐인형…’은 당혹스러운 소설이다. 그 당혹감은 서사가 선의 구조로 뻗어가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둥글게 말려버린다는 데서 비롯된다. 또 그렇게 형성된 원의 내부 역시, 환상과 현실, 실재와 허구, 주체와 객체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원무(圓舞)하는 낯선 공간이다. 이 소설의 세계는 ‘상식의 대립항’들 사이의 상식적 경계가 허물어진, 경계 부재의 폐허 위에 서 있다. 하니, 줄거리 요약은 쉽지 않고 무의미하기까지 하지만, 거칠게나마 보자.

지방 출장을 마치고 심야에 상경하던 ‘나’는 고속도로를 벗어난 뒤 길을 잃고 헤매던 중 ‘휘파람별’에서 온 우주인을 만나 ‘우주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일상의 감각과 기분 의지 의욕 일체를 상실한 ‘나’는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서 버림받고도 상실감이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다. 도시는 어느새 감염자들로 북적댄다. 새로운 숙주 찾기에 동원된 ‘나’는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애초부터 외계인이었고, 이 별도 실은 지구가 아니라 휘파람별이었다." 책에 실린 또 하나의 단편 ‘마녀의 피’ 역시, 한 젊은 부부의 사도마조히즘적 일상이 현실·환상의 교차와 주객의 혼동 속에 전개되는 작품이다. 그의 소설이 암시하고 평론가 허윤진씨가 설명하듯,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애당초 없으며, 단지 그렇다고 믿는 ‘착각’만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두는 일이, 가령 포르노스타의 헐떡임을 두고 옥타브나 데시벨의 잣대로 연기의 과장성을 평가하는 시도처럼 허황한 것일까.

중편 하나, 단편 두어 편 분량인 원고지 300매 남짓으로 소설책을 낸 것은 우리 출판계에서는 처음 시도된 일인 듯 싶다. 출판사측은 "작품의 선도(鮮度)를 살려 독자들에게 전하고, 아깝게 묻혀버린 작품을 발굴해 다시 선뵈기 위한 것"이라며 "우선 1960년대 이후 젊은 세대의 작품을 중심으로 올해 25~30권의 책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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