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의 전설’바비 피셔(62)가 국제미아 신세를 청산하게 됐다. 고국인 미국 정부의 수배를 피해 13년 동안 세계를 떠돌던 그가 마침내 정착하게 된 곳은 아이슬랜드. 1972년 당시 세계체스챔피언인 구 소련의 보리스 스파스키를 7승3패11무승부로 따돌리고 미국인으로선 100년 만에 첫 세계체스챔피언으로 등극했던 곳이다.
24일 일본인 약혼녀 와타이 미요코(일본체스협회장)와 함께 아이슬랜드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그는 기쁨보다는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 특히 여권 유효기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최근 9개월 동안 자신을 구금한 일본 당국에 거친 불만을 쏟아냈다.
덥수룩한 수염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이 괴짜천재는 취재진을 향해 "일본이 내게 씌운 혐의는 말도 안 되는 것이며 나를 구속한 것은 강제납치 행위"라며 "내 여권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고이즈미가 부시와 친해 그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부시와 고이즈미는 교수형에 처해야 할 전범(戰犯)들"이라는 독설도 퍼부었다. 앞서 아이슬랜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도쿄 공항을 빠져나갈 때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벽에 오줌을 내갈기는 시늉을 내며 "일본 집권당은 깡패들"이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냉전시대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 받았던 피셔는 92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세계체스대회에 참가하면서 졸지에 수배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당시 미국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경제 봉쇄령을 이유로 피셔에게 경기불참을 종용했으나 그는 스파스키와 30년 만의 재대결을 위해 이를 거부했다. 결국 스파스키를 또 한번 물리치고 우승했으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미 정부에 의해 수배됐다.
이후 그는 전세계 체스 애호가들의 도움으로 헝가리와 필리핀, 일본 등지를 떠돌아 다녔다. 그의 이번 아이슬랜드행은 최근 아이슬랜드 의회의 국적 부여 결정을 일본이 인정해 이뤄진 것. 그러나 미 국무부는 피셔가 아이슬랜드에 도착한 뒤에도 그에 대한 수배와 기소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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