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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다시 각자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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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다시 각자의 길로

입력
2005.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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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냐고 장난스레 물었더니, 가로등 위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밤거리 가로등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얼마나 근사할지 생각해 본 적 있냐고 되묻는다. 고3 수험생들의 대화치고는 꽤나 운치 있는 대화였다.

같은 대학에 원서를 넣었건만, 나는 합격했고 친구는 불합격했다. 하숙생활 같이하자고 약속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하다며 씁쓸한 표정이다. 갑작스레 체육 관련 전공으로 바꾸더니 결국 한 방에서 몇 년을 살았다. 어느 해 겨울 밤거리에선 깡패를 만나 열심히 함께 맞았고, 춘천의 훈련소에서는 처음으로 서로의 눈물을 봤다. 각자 대학원에 진학하고 다른 생활공간을 갖게 되었지만 주말이면 잡담과 게으름의 향연을 함께 즐겼다.

그런데 이 친구, 다음 주에 결혼한단다. 게다가 결혼 직후 유학을 가기로 했단다. 이건 뭐랄까, 가슴 한 구석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다. 장가가기 빠른 나이는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는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그리고 바로 유학이라니…. 전화를 끊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우리는 몇 가지 인생의 전환점을 늘 함께 겪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때는 그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괴상한 만족감이나 안정감이라고나 할까. 세상이 우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젠 친구가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 그래, 드디어 밤거리 가로등에 혼자 오르는 셈이다. 다시 전화를 든다. 진심으로 축하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밤거리 가로등에 오르는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다. 친구의 표정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기분 좋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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