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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인생에서 은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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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인생에서 은퇴란 없다

입력
2005.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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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지금과 같은 초고속 성장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멀지 않아 만성적인 저성장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남북 통일이 정말 어느날 갑자기 현실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20년 안에 한국사회에 이보다 훨씬 큰 충격을 안겨줄 일이 있다. 사회 고령화 문제다. 고령 사회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일본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중요한 사회문제로 이를 고민해왔다. 1945년에 이미 고령 사회에 진입한 미국, 또 유럽의 많은 나라도 여러 가지 고령화 사회 대처 방안을 내놓고 정책의 효과를 검증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우리가 고령화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불과 몇 년이 안 된다. 그리 많지도 않지만 관련 책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최근 2, 3년 사이다.

사회 고령화의 징후가 뚜렷해진 것이 그리 오래지 않으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는 데 있다. 유엔은 65세 이상 노령 인구의 비율이 7%가 넘는 사회를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 사회, 그리고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정의한다. 선진국들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넘어가는데 대략 40~115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18년 뒤면 고령 사회로 바뀌고, 8년이 더 지난 2026년쯤에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40~44년 걸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노르웨이 영국 프랑스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도 초고령 사회가 되는 것이다. 고령화 문제를 ‘시한폭탄’이니 ‘쇼크’니 ‘지진’이니 하는 좀 과격한 수사로 표현한 것을 괜한 엄살로 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절반을 넘고, 젊은이 두 사람이 열심히 벌어 노인 한 명 먹여 살려야 하는 사회를 생각해보라.

에세이처럼 쉽게 써내려 간 최재천 서울대 교수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는 독특한 발상만으로도 일독할 가치가 있다. 최 교수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요약해 ‘인생에서 은퇴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번식을 자제하거나 포기’하는, 또 번식 능력을 상실한 뒤에도 오래도록 사는 매우 희한한 생물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인생 자체를 50세를 기준으로 ‘번식 세대’와 ‘번식 후 세대’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젊은 시절 벌어 놓은 돈으로 뒷방 퇴물처럼 살 것이 아니라, 두 인생 체제에 맞춰 인생을 철저하게 이모작하라는 것이다.

조기 퇴직 바람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시각을 달리하면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데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차피 그때쯤 제1 인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니까 말이다. 은퇴 시점을 조금 더 늘리는 것으로는 근본 대책이 안 된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제2의 인생은 계속 벌어서 쓰는 체제이다. 물론 이런 구조를 뒷받침할 사회체제, 정책 없이 개인의 결심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사회 전체가 인생살이를 보는 시각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런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조기 결혼, 조기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가 양육의 상당 부분을 떠맡는 보육환경 개선도 필수다. 양육 부담이 클 제1 인생 시기에 지금보다 더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도록 하는 정부와 기업의 마인드 변화도 중요하다. 노동 인구 확충을 위해 이민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정부도, 개인도 연금으로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연금은 고령화 사회 정책으로 나온 것이 아니며, 실제로 연금정책이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런 대안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존 헨드릭스 미국 노인학협회장의 말을 들려준다. "한국의 고령화 현상은 가히 혁명적이다." 최 교수는 "혁명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10년은 금보다 더 소중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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