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3년 내내 내 책가방 속엔 주판이 들어 있었다. 강릉 시내의 크고 작은 가게들, 또 몇 개 안 되는 은행들과 관공서 모두 주판으로 돈을 계산했다. 원가 계산도 주판으로 하고, 이자 계산도 주판으로 하고, 세금 계산도 주판으로 하고, 전기세 계산도 주판으로 했다.
그때 이미 숫자판을 두드려 계산하는 전자계산기가 나오긴 했지만, 속도에서나 간편함에서나 손가락의 정확성에서나 그것은 주판과 게임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그때는 ‘상업학교’하면 주산이었다. 다른 공부는 다 따라갈 수 있어도, 왼손잡이라 오른손의 감각이 무뎌 주산만은 어쩔 수 없어 그걸로 낙담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몇 년 전 모교를 방문했을 때 수업시간표에 주산이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판은 이미 오래 전 어느 직장에서도 쓰지 않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작은 구멍가게도 이제 주산을 쓰는 곳은 없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이 다음 내가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도 주판의 쓰임새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렇게 천년만년 쓸 줄 알았는데 내 당대에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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