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선(禪)수행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치열한 구도의 과정이지만, 그 내용은 ‘단지 정신차리고 사는 것일 뿐’이라고 선사들은 말한다. 그래서 선수행은 인간정신을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현대정신의학의 관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선수행을 정신과의사, 심리학자의 눈으로 해부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정신치료학회가 26일 서울대 치과병원에서 ‘선수행과 정신치료’를 주제로 여는 학술연찬회에는 선수행의 경험이 많은 스님들과 정신치료 전문가들이 참가한다. 서울 육조사 선원장 현웅스님, 대구용연사 주지 지운스님, 전현수(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박사 등이 수행체험을 발표하며, 이동식 한국정신치료학회 명예회장과 중앙승가대총장 종범스님이 좌장을 맡는 패널토의도 예정돼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티베트 스님들과 정신과학자들간의 대화가 빈번하지만, 국내에서는 1984년 전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과 부산 범어사 조실 지유스님이 정신치료 전문의들과 세미나를 한 이후 21년 만에 이런 만남이 성사됐다.
선수행과 정신치료의 유사점은 이렇게 설명된다. 선에서는 애응지물(碍膺之物·가슴에 거리끼는 것)을 제거하면 곧 각(覺·깨달음)이라고 하고, 정신치료에서는 환자가 자기 발병의 원인이 되는 핵심감정을 깨닫고 정화함으로서 치료가 된다고 하는데 이 둘의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수행과 정신치료의 비교’를 주제로 발제를 하는 정신과전문의 박병탁(박병탁신경정신과의원) 박사는 "둘 다 자기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정신치료는 의식의 내용인 사고와 감정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것인 반면에 선수행은 의식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파사나 명상을 체험하고 이를 환자 치료에 응용하고 있는 정신과전문의 전현수 박사는 "정신적 고통은 과거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에 파묻혀 사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호흡을 주시하는 위파사나 수행을 하면 현재에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전 박사는 "불면증 환자나 화를 많이 내는 환자에게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지운스님은 "불교수행은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치료와 수행이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면서 "수행을 하면 몸이 바뀌고 그에 따라 고집 자만심 화를 일으키는 마음이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지운스님은 특히 불교수행은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자비심에서 시작되고, 마음을 변화시키는 구체적 방법이 있는 점이 정신치료와 다르다고 말했다.
이정국 한국정신치료학회장은 "선수행은 본래의 자기 모습을 깨달아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동양적 방법인 반면, 정신치료는 자기 삶을 지배하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나 자기실현을 하자는 서양에서 발전된 방법"이라면서 "선 수행자들로부터 진솔한 경험을 듣고 토론을 통해 두 분야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고자 한다"고 기대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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