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해튼계획(Manhattan Project)으로부터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1943년. 극비리에 원자탄을 개발하는 미국의 ‘맨해튼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10월 30일, ‘맨해튼계획’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던 코난트 박사를 포함한 3명의 핵심과학자들(그 중 2명은 노벨상 수상자였다)이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을 만났다. 그에게 비밀보고서 ‘방사능 물질을 군사무기로 사용하는 방안’을 건넸다. 이 문서는 1975년 6월 5일 비밀에서 해제되었다.
열화우라늄 탄의 뿌리를 그 문서에서 발견하게 된다. 문서는 독일이 먼저 방사능물질 무기를 사용할 개연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생산능력을 분석하고 이를 사용할 경우에 따른 피해를 추산했다. 이에 대비해 미국도 방사능물질 무기를 개발하자는 건의와 함께 이미 별도로 시행 중인 화학무기 개발의 인원과 시험시설을 이용하면 즉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구체적 계획을 담고 있었다.
극히 미세한 방사능 분진을 안개나 연기 또는 가스처럼 전장에 살포해 적을 무력화시키고 그 지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봉쇄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 방사능 가스를 방어할 수 없다, 오염된 사람을 치료할 수 없다, 가스마스크의 필터를 통과할 만큼 입자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더 효과적이다, 인체에 유입되는 양에 따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최초의 원자탄이 일본에 투하되기 2년 전, 원자탄 개발의 핵심 과학자들이 최고 책임자에게 보고한 이 비밀계획은 수십 년 후 망령처럼 되살아나 열화우라늄 탄으로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정부와 군사당국은 이미 1943년부터 방사능 물질의 전쟁무기화 가능성과 그 성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열화우라늄탄에서 발생하는 극미한 우라늄 산화물 분진과 가스, 연기처럼 퍼져 나갈 오염의 확산, 오염의 결과를 그 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원자력산업과 무기산업의 결합 = 국제 민간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3년까지 미국에만도 56만 톤의 열화우라늄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아마 70만~80만 톤은 될 것이다. 프랑스도 20만 톤 이상의 열화우라늄을 안고 있다. 언젠가 재농축 공정이 일반화하면 재고를 줄일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열화우라늄을 사용한 무기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처리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쌓여만 가는 원자력 폐기물, 특히 열화우라늄의 처리에 고민하던 미국 정부와 관련 원자력 산업이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맨해튼계획’팀이 만든 보고서다. 무기체계 사용에 가장 적합하고, 그 동안 사용해온 텅스텐의 20분의 1 가격으로 무제한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늘어나는 열화우라늄 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무기산업의 특성은 가장 효과적인 물질과 구조, 체계를 만들어 전쟁에서 단기간에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도덕성, 환경 친화성, 인도적 고려는 애초 기대할 수 없다. 그럴 듯한 명분을 갖춘다 해도 전쟁은 비인도적이고 반문명적이며 반환경적 비도덕적이다. 이것이 바로 무기산업의 본질과 한계다.
이런 무기산업과 정부와 원자력산업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결합해 열화우라늄 탄을 탄생시켰다.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반핵·반방사능 운동과 여론을 무마하는 것이었다. ‘열화(劣化·Depleted)’라는 단어가 번뜩였다. 해롭지 않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좋은 이름이었다. 더구나 반감기가 45억년이라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방출하는 방사능의 양이 지금 우리에게는 해로운 수준이 아닌 극소량이라고 설득할 수 있으리라. 열화우라늄 탄을 사용해 신속하게 적을 격파함으로써 미군의 인명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고 선전하면 여론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어둠 그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 = 엄격한 관리와 통제를 거친 미국 열화우라늄 탄에서조차 극미량의 플루토늄이 검출되었다는 보고서는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심각한 위험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국제적인 민간 조직이나 활동가들의 눈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곳, 즉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에서 생산되는 열화우라늄에 대하여는 생산, 특성, 성분, 성능에 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없다. 그 나라들의 국제적 거래 또한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생산한 것보다 더 유독성이 강하고, 방사능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한 치명적인 무기일 수도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전차 무기나 견고표적 파괴용 무기 외에 또 다른 어떤 체계에 사용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파키스탄, 중국, 러시아등과 연계하여 원자력, 핵, 방사능 물질과 기술을 교류하고 있는 나라들의 군사력 강화 방향과 무기체계 편성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정밀 추적할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 커넥션과 연결된 북한의 움직임이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어둠 저쪽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 확산되는 열화우라늄 탄 = 열화우라늄 탄은 1990년대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미국의 대단한 성공을 본 많은 나라들이 열화우라늄을 자기들 무기체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터키, 이스라엘, 파키스탄 등은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하고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이집트, 태국, 대만 등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으로부터 열화우라늄 탄을 구입했다. 인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정밀하게 확인해 보아야 한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 간의 ‘연합작전’ 강화계획에 따라 유럽의 여러 나라도 열화우라늄 탄을 도입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앞으로의 전쟁에서는 미국이 열화우라늄 탄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전투에서 열화우라늄 탄에 의한 부상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전쟁에 참가한 모든 국가의 병사들이 열화우라늄 탄 부상자로 후송될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미국 육군 화학학교 교범에 수록된 장래의 전쟁에 대한 예측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열화우라늄 탄의 폐해를 부인, 은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확산을 선도하고 있다. 늘 전쟁을 치르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남의 땅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의해 부서지고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1990년 7월 미 육군 보고서는 열화우라늄에 의해 오염된 지역은 어떤 형태로든 복구, 정화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 육군성의 지침서도 열화우라늄에 오염된 토양, 특히 농경지이거나 젖은 땅일 경우 표면으로부터 일정 깊이까지 흙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 육군이 운영하는 제퍼슨 사격장 200만㎡를 정화하는 비용이 자그마치 미화 40억~50억 달러라는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대로 이라크 전쟁에 의해 오염된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를 정화한다면 수백 억, 수천 억달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미 육군 환경정책연구소가 1995년 의회에 보고한 문서를 보면 강대국의 독선적 논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즉 어떠한 국제조약, 법, 규정, 관습도 미국에게 이라크 전쟁지역의 정화. 복구를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미국은 이 일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 주변국들과 우리의 안보현실 = 우리나라는 열화우라늄 탄을 생산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텅스텐 관통자 기술을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덕분이다. 물론 텅스텐도 중금속 오염이 뒤따르지만 최소한 방사능 오염만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국 모두가 열화우라늄을 무기체계로 확보하거나 사용할 개연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주한 미군이 전시용 탄약으로 열화우라늄 탄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가 개발, 생산에 활발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북한도 우리 관심의 중요한 대상이다. 만일 큰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선 이 땅에서 전투가 벌어질 위험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 다루겠지만, 이제까지 알려진 열화우라늄 탄 외에 다른 정밀유도 폭탄에도 열화우라늄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문이 국제 민간기구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점은 우리의 안보현실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열화우라늄은 ‘우라늄 238(U-238)’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윤석철 객원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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