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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대일선언이 주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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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대일선언이 주는 충격

입력
2005.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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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독도·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밝힌 신 대일 독트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외교적 선전포고에 가깝다. 국민이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정부정책에 대한 갑갑함을 생각할 때, 이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취지에 공감한다. 다만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의 전략적 선택과 관련하여 적절한 대처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다짐했다.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이어 두 번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같은 발언으로 보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의 설명으로도 현 정부 취임 순간에 시작된 전면적 대외 관계 재검토의 잠정적 결론이라고 한다.

그 기본 방향은 상식이나 원칙에 맞는다. 최근 동북아의 정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 중심축이 미국과 중국의 상호 견제, 또는 대립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런 구도에서 한국이 설 자리는 세 가지이다. 상대적으로 양자의 어느 한 쪽으로 기울거나 중간에 서는 것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 때의 위험부담을 생각하면 중간자리가 가장 쉬운 선택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선택이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에 부합하느냐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 안보의 근간인 군 지휘관 양성 기관의 졸업식에서 나왔다. ‘균형자 역할’이 독자적 안보 능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현실적 인식의 결과이고, 힘을 키워 달라는 국군 통수권자의 주문이다. 그러나 실력과 대외 정책 표방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장기적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막후에선 언제든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당장 주한 미군 철수 등 국민적 논란을 부를 수 있는 현실에서는 성급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런 발언이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파장을 부른다는 점이다. ‘민족공조’라는 정서적 잣대를 넘어 실질적 동맹관계를 따질 때 한국은 현재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구도 안에 있다. 중국과 북한의 동맹도 엄연한 현실이다. 당연히 미국과 중국은 각각 북중동맹의 견제, 한미동맹의 견제를 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런 마당에 한국의 ‘한복판 선언’은 그 자체로 미국에는 거리감, 중국에는 성취감을 준다. 이것은 전략적으로도 현명하지 않다.

분출한 국민 감정과 연계한 일련의 대일 정책도 다를 바 없다. 이웃나라의 지지와 공감조차 얻지 못한 상태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일본의 태도는 잘못이다. 그러나 그 견제 책임을 굳이 한국이 질 필요가 있을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거부권 행사, 또는 기권이 관건인 상황에서 침묵의 값어치가 크며, 중일 관계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도 일본 국민 전체를 불신하고 적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일본의 국민정서를 건드릴 수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반대 의사를 못박아 전략적 지위를 잃게 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한 흐름이 되고 있는 한미동맹의 약화까지 감안할 때 현재 한국의 외교 노선이 고립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대미·대일 거리두기가 의미를 가지려면 대중·대북 관계에서의 상대적 보상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대중 관계는 잠복한 요소가 너무 많다. 경제 발전에 따른 중국 내부의 국가통합 문제만도 앞날을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의 분명한 실체와 정권 차원의 이익을 생각할 때 대북 관계도 앞을 내다볼 수 없다.

국민정서에 기반한 자주 강경노선은 일시적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국민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한 정권을 지나 국민이 떠안아야 할 국가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 등 국익 전체를 보다 큰 틀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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