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후 한국 증시에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과 삼성전자 등이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독점·양극화 구도가 깨지면서, 국내 투자자와 삼성전자 이외의 다른 우량주들이 각각 외국인과 삼성전자의 빈자리를 급속히 메워가는 ‘분점·다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최고에 달했던 외국인과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2002년 9월5일 34.05%에 불과했던 전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지난해 4월26일에는 44.14%까지 늘어났으나, 이후 추세적으로 감소해 23일에는 42.47%까지 밀려났다.
삼성전자(보통주 기준)의 거래소시장 시가총액 대비 점유율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23일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6.35%로 국제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매우 높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엑슨모빌의 점유율은 2.72%, 일본 도쿄증시의 1위인 도요타의 비중은 3.87%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계열로 분석하면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은 2002년 3월18일 15.44%에서 2004년 4월23일 22.98%까지 급증한 뒤, 이후 추세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굿모닝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지난해 2분기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나타냈으나 종합주가지수는 상승했다"며 "이는 90년대 이후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사회 전반의 양극화 현상과 무관하게 증시에서 다변화가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외국인 영향력의 감소는 국내 투자문화의 변화때문이며, 삼성전자의 독점 약화는 증시에 상장된 중소형 종목에 대한 가치 재평가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증권은 ‘전환기를 맞은 가계 금융자산'이라는 분석보고서에서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간접투자시장이 확대되면서 장기간 주가가 상승했던 것과 같은 양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장근난 연구원은 "2003년말 1,070억원이던 적립식 펀드 설정액이 18일에는 2조620억원으로 20배나 늘어나는 등 간접투자 방식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인들이 15일 연속으로 1조5,000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지만, 증시로 유입된 국내 부동자산이 이를 넉넉히 흡수해 과거와 같은 주가 급락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동원증권 정훈석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위세에 눌려 증시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다른 종목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 증시를 이끄는 주도 종목군의 다변화가 정보기술(IT) 업황 부진과 그에 따른 삼성전자 주가 하락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굿모닝증권 김 연구원도 "시장의 물 밑에서 한국 증시의 안정성을 높이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해 4분기 이후 한국 증시의 변동성 축소도 구조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