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날을 기억하고 챙기는 습관이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연인들 같으면 만난지 몇일째 되는 날이라든지. 때로는 누구에게 쉽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이나 기억들도 있다. 그 날들과 기억들이 소중한 것은 그 일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내 인생에 주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의 시기는 그런 날들과 같다. 이천년 전 역사 안에 실존했던 나자렛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오늘의 시간 속에서 체현(體現)하고자 하는 거룩한 날들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 앞에 선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 참아낼 수 없을 듯 보이는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십자가란 형틀을 짊어지고 부활을 희망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비운의 삶과 열정. 작년에 개봉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란 영화는 고통이란 인간이 회피할 것이 아닌 끌어안아야 할 인생의 운명과도 같은 신비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인에게는 한(恨)의 심성이란 것이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의 운명을 포기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조화와 상생의 길로 초극하려는 종교적 감각 말이다. 쉽게 삶을 포기하고, 좌절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려는 우리 세대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이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신념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인생의 신비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 사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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