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盧대통령 '3·23 對日선언'/ 외교적 '선전포고'…한일관계 큰 파장 예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盧대통령 '3·23 對日선언'/ 외교적 '선전포고'…한일관계 큰 파장 예고

입력
2005.03.24 00:00
0 0

■‘對日선언’의미

노무현 대통령의 3·23 대일 선언은 ‘외교적 선전포고’라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초강경 기조여서 한일 관계에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노 대통령은 23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을 거론하며 작심한 듯 포문을 열었다. "반드시 뿌리를 뽑을 것이다" "각박한 외교 전쟁도 있을 수 있다"는 등 격한 표현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날 선언은 17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발표한 대일 신독트린보다도 더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말한 것보다 톤이 더 강하다는 주장도 있다.

노 대통령의 선언은 크게 두 가지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일본을 향한 강경한 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을 향한 차분한 메시지이다.

우선 일본을 향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침으로써 성의있는 답변과 양보를 요구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물러서거나 유야무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일본의 성의가 없으면 끝까지 가겠다는 통첩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특히 민감한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의 지도부를 직접 겨냥했다.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이 일본 집권세력과 중앙정부의 방조 아래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울러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가 그 동안 일본 지도자들이 한 반성과 사과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진검 승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우리 땅’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 2월22일은 일본이 러일전쟁 중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편입한 침략의 상징적 날짜로 규정했으며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도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갖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강경의 이면에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일본 국민 전체를 불신해서 안 된다"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차분한 주문을 한데서 감지된다.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자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미래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해 일정기간 고통을 감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양해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일본 지도부에게 보내는 행간의 협상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노 대통령의 선언에 화답을 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기대와는 반대로 냉담한 대응, 강한 반발로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3·23 선언은 일본의 결단을 촉구한 승부수이지만, 역설적으로 한일관계를 더 어렵게 하고 크게 뒤틀리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평할 수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日 "대통령이 정말 직접 썼습니까"

"정말 그런 글을 직접 쓰셨습니까." 일본 외무성의 핵심 간부는 23일 전화로 코멘트를 요청 받고 이렇게 되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한 뒤 일본 정부는 놀라고 혼란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무성 다카시마 하츠히사(高島肇久) 외무보도관(대변인)은 "한국 국민의 대표인 노무현 대통령의 성명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정밀 분석한 뒤 대응을 검토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시마 대변인은 "일본 정부 입장은 지난번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성명에 대해 발표한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외무성 장관의 담화에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대통령으로 격을 올려 성명을 냈는데, 일본은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착실히 해나가겠다"면서도 "그러나 담화를 벗어나는 새로운 내용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화로 접촉한 다른 외무성 관계자는 "이번에 노 대통령이 어떤 배경과 형식으로 글을 발표했는지 당장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이날 노 대통령의 글에 대해 직접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날 회견에서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시적인 의견의 차이와 대립에만 눈을 돌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 국민의 지혜와 노력을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중국 최고지도자들은 회담 등에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노 대통령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일본 외무성 주변에서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일본과의 정상외교를 중단할 결심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무성 관계자들은 "외교 경로를 통해 나름대로 교과서 검정이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도록 애쓰고 있다고 한국측에 알려줬다"면서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선언 나오기까지/ 18일 鄭통일·潘외교 등과 對日대책 논의후 5일간 직접 메시지 정리

노무현 대통령은 19일부터 컴퓨터 자판을 직접 두드리며 3·23 대일 선언을 작성했다. 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관저에서 조세형·최상용 전 주일대사, 정동영 통일부장관, 반기문 외교부장관,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등과 만찬 모임을 갖고 한일관계 대응책을 논의한 뒤 선언에 담을 메시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20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15분간 강의하며 논리를 다듬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4~5일 동안 자신의 심경과 논리를 직접 정리해왔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노 대통령이 초강경 메시지를 던진 이유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어서 대통령이 기본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선언의 수위가 높은 데 대해 "참여정부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정부"라며 "일본이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당초부터 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려 했다"고 말했지만,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원칙을 밝혀야 한다는 시중의 여론도 고려해서 이 같은 선언이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핵심 관계자들과 상의하고 신문 칼럼 등을 참고하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서도 노 대통령의 선언 발표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인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측은 ‘뿌리 뽑겠다’ ‘외교 전쟁’ 등의 강경한 표현도 참모들과의 조율을 거쳐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에는 선언의 끝 부분에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썼다가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역사의 응답을 받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김광덕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