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도쿄의 한복판 작은 아파트에서 엄마에게 버려진 4남매가 6개월동안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다, 그 중 한 아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아이들 중 첫째를 제외하고는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다. 언론에서는 당연히 비정한 모정을, 이웃의 무관심을 욕했다. 그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15년이 지나 완성된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온몸 구석구석이 아플 정도로 슬프다. 그런데 아름답다. 동화로 보일 정도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답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비극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괴로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새 남자친구가 생긴 엄마가 약간의 돈을 남겨둔 채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간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행복하다. 엄마가 싫어해 베란다에도 나가지 못하던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마음껏 공원을 뛰어다닌다. 컵라면 용기에 씨앗을 심어 화단을 가꾸는 것도 즐겁다. 학교도 가지 않고 공원을 맴돌던 왕따 소녀 사키(간 하나에)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돈은 떨어져가고 전기가 끊기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 옷은 해지고, 기운이 빠진 막내는 방바닥에 누워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장남 아키라(유야 야기라)는 편의점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삼각김밥을 얻어오고, 공원에서 물을 떠 온다. 그래도 즐겁다.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공원에서 물장난을 한다. 세상의 비정함과 상관 없는 듯 아이들은 밝고 그래서 아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만 돌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키라의 말에 "학교 재미없어. 아빠 없다고 왕따 당해"라고 대꾸할 정도지만, 엄마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 아들이 만들어 놓은 카레에 즐거워 하고 선물도 사온다. 아들 앞에 "난 행복해지면 안돼?"라고 반문하는 그녀의 얼굴에 대고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 찍기는 쉽지 않다. 모든 책임을 ‘모성’에 전가하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고, 그녀도 상황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21일 방한했던 소년 유야 야기라가 2004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오히려 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감독은 연기경험이 전무한 아역 배우들을 데리고, 무려 1년의 기간을 들여 천천히, 자연스러운 모습을 잡아냈다. 참 아프지만, 봐야 할 영화다. 4월1일 개봉. 전체관람가.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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