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의장경선에 출마한 유시민 후보의 ‘반(反) 정동영’발언으로 당내 구 당권파와 유 후보 중심의 개혁당파가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 구 당권파 소속 의원들은 23일 유 후보를 ‘분파주의자’라며 강력 비난했다. 양측의 대결은 후보간 합종연횡 등 의장경선 구도에도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구 당권파 의원 모임인 ‘바른정치모임’ 회장인 이강래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흥분된 표정으로 유 후보를 맹공했다.
이 의원은 우선 "유 후보가 기간당원제를 마치 자신이 도입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당원 모독이자 국민 기만"이라며 "2003년 당시 민주당 개혁안과 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시절 당헌에서 기간당원제는 정당개혁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 도입됐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정동영계가 총선 이후 초창기 4개월동안 기간당원제 폐지를 위해 허송세월을 했다"는 유 후보의 발언도 반박했다. 그는 "당비 중심으로만 기간당원을 한정할 경우 농촌 지역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기간당원제 확대를 주장했던 것"이라며 "허위사실 유포이자 명예훼손"이라고 비난했다.
이 의원은 나아가 "동지들을 낡은 세력으로 매도해 적대관계로 규정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유 후보가 터무니없는 독선과 아집, 분파주의, 말과 행동의 경박성, 의장 경선 불출마를 번복한 말 바꾸기 등 4가지 이유 때문에 당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개인 자격의 반박"이라고 했지만, 이는 유 후보에 대한 구 당권파 전반의 인식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너무 서글프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비 미납으로 궁지에 몰린 유 후보가 국면을 전환하려고 한 해당(害黨)적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친 정동영 성향인 국민참여연대 이기명 고문도 홈페이지 글에서 "표 몇 장 얻을 수 있다면 동지의 가슴에 서슴없이 비수를 꽂는 잔인성은 기존의 썩은 정치에서 신물이 나도록 봤다"며 "제 얼굴에 묻은 시커먼 때는 보지 못하고 상대에게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성장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 후보와 각을 세우고 있는 송영길 후보측도 가만 있지 않았다. 임종석 의원은 "당비 납부 문제에 대해 겸손히 사과해야 할 마당에 왜곡된 대립구도를 만들어 정치적 반사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송 후보측의 386 의원들은 릴레이로 유 후보 비판 글을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다.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유 후보는 일단 한발 빼는 모습이었다. 유 후보는 이날 전주 기자간담회에서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를 밝힌 게 아니라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이 각각 대표격으로 있는 두 정파 사이에 노선과 문화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며 확전을 피했다.
그러나 두 세력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게 중론이다. 어차피 화합이 불가능한 만큼 대선국면까지 갈등과 대립이 수시로 재현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두 세력 왜 싸우나/ 실용 對 개혁 지향점 달라 ‘밀월’깨져
유시민 의원의‘반(反) 정동영, 친(親) 김근태’선언에 대해 23일 정동영 통일부장관계로 분류되는 이강래 의원이"독선, 아집, 말바꾸기"라는 극한 용어로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 의원이 이처럼 유 의원을 공격한 것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온건, 실용 성향의 정 장관 측과 개혁당파는 이념이나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다.
정 장관 측 인사들은 대부분 구 민주당 출신 바른정치모임 소속이다. 정세균, 천정배, 이강래, 김한길 의원 등이 핵심으로, 창당 과정에서 당권을 장악해 지금까지 주류에 서왔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노선이 같은 문희상 의원을 지원했다.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파는 참여정치연구회가 주축이다. 이들은 개혁 성향이 강해 당내에서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 유기홍, 이광철, 김원웅 의원 등이 핵심이다. 유, 김 의원 외에도 김두관 전 장관까지 3명이 예비경선을 통과했고, 유 의원과 김 전 장관은 선두인 문 의원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성공 후 정 장관 측과 개혁당파가 한때 밀월 관계로 지낸 시기도 있었다.
작년 전대에서 개혁당파가 정 장관을 지원했었다. 하지만 개혁당파는 "전대 이후 정 장관 측이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며 자신들을 배제했다"며 섭섭해 하고 있다.
정 장관 측과 개혁당파의 대립 꼭지점에는 김근태 복지부장관이 있다. 김 장관 계보인 국민정치연구회는 대부분 재야 출신으로 이번엔 장영달 의원이 출마한 상태다. 국정연 회원은 문학진, 최규성, 김태홍 의원등이다.
이런‘한 지붕 세 가족’구도 속에서 유 의원은 김 장관 쪽에 손을 내밀음으로써 전대를 ‘김근태 대 정동영’의 대결구도로 치환시키려 했다. 개혁 진영이 5인을 뽑는 지도부 중 최소 3명을 차지해 당의 개혁 색채를 확실히 하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김 장관 쪽은 고민중이다. 1인 2표 제도에서 개혁당 후보만 3명이기 때문에 연대 효과도 크지 않고, 유 의원이 개혁 이미지를 독점하고 있다는 경계심도 있다. 더구나 이번 전당대회를 대권 전초전으로 치르는 게 꼭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표정이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