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해 23일 개막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여러 모로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이 1967년 초연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베르디, 푸치니 등 이탈리아 오페라에 쏠린 국내 무대에서 모처럼 만난 독일 오페라가 반갑기도 하거니와 독일인 볼프람 메링이 연출한 현대적인 무대의 시각적 독특함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베버가 작곡한 이 작품은 ‘독일 국민 오페라의 효시’ 라는 음악사의 평가 그대로 지극히 독일적인 오페라다. 독일 전설을 소재로 했고, 독일의 깊고 어두운 숲이 배경이며, 다소 무겁고 사색적으로 흐르는 음악 또한 독일적이다. 줄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악마가 만든 마법의 탄환으로 사격대회에 나간 사냥꾼의 이야기다. 악마의 유혹과 그로 인한 선과 악의 투쟁, 유혹에 무너진 인간의 나약함을 용서하는 신의 사랑이 전개된다. 숲의 마성과 신비,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사람 같은 독일의 초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전설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3막으로 구성한 이번 공연에서 특히 2막 2장 늑대의 골짜기 장면은 압권이다. 마법 탄환을 만드는 악마의 계곡, 흐느적거리는 유령과 괴성, 무시무시한 관현악이 터져 나오는 이 장면에서 메링이 연출한 초현실적 무대는 매우 효과적이다. 자루를 뒤집어쓴 유령들, 지하세계로 회전하며 내려가는 나선형 철골계단, 마법의 탄환이 완성되는 순간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종유석 모양의 뾰족하고 위협적인 구조물 등이 빚어내는 긴박한 두려움은 사뭇 충격적이다.
이 장면을 뺀 나머지 장면은 똑같은 세트로 갔다. 지루하거나 기이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런 연출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오페라에 빠지지 말고 거리를 두고 생각하면서 볼 것을 권하는 듯하다. 이는 관객이 보는 앞에서 바위나 탁자, 침대 등 세트를 움직인다든지, 합창단을 움직이는 무대 세트처럼 활용해 스톱 모션과 움직임을 오가게 한 데서도 짐작된다.
23일 공연의 주인공인 사냥꾼 막스 역의 테너 하석배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관객이 마음 푹 놓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된 노래가 시원스럽고 편안하게 들렸다. 막스를 유혹해 악마에게 넘기려는 카스파 역 베이스 함석헌의 열연도 발군이었다. 그러나 소프라노 권해선은 순수한 사랑의 여인 아가테로 보기에는 음색과 표현이 다소 무거운 편이어서, 아가테의 친구인 명랑한 처녀 엔헨으로 나온 박지현의 밝고 화사한 노래가 오히려 더 두드러지는 느낌을 주었다. 여느 오페라에 비해 관현악의 비중이 큰 이 작품을 열심히 소화해서 전달한 지휘자 박은성과 코리안심포니의 활약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연은 26일까지 계속된다. (02)586-5282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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