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억대의 정부 지원 연구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교수에 대해 학칙상 규정된 직위해제는 물론, 형이 확정된 지 7개월여가 지났는데도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23일 고려대에 따르면 컴퓨터공학과 이모(43) 교수는 정부지원금 3억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3월 구속기소 됐는데도 교수직이 박탈되지 않았다. 이는 ‘교원이 기소되면 직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립학교법 및 이 대학 재단 정관48조를 위배한 것이다.
기소시 직위해제 조항은 비위 교수가 학생을 가르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 파면이나 해임과 달리 학교 직원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지만 정상 월급의 20%정도를 삭감당한다. 또 사립학교는 일반적으로 교수가 형벌이 확정되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직위해제와는 별개로 파면 해직 정직 경고 등의 징계를 결정한다.
그러나 고려대측은 이 교수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지만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고, 지난해 7월 항소심에서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난해 연구비 수백만원을 횡령한 J교수에 대해 형사상 기소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연세대 역시 연구비 1억여원을 횡령해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은 연세대 독문과 교수 3명에 대해 정직 2개월 등의 징계를 내렸다.
현재 휴식년을 맞아 외국에 체류 중인 이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이 문제로 직위해제나 징계를 받은 적은 없다. 벌금으로 다 끝났다"고 말했다.
고려대 측은 "이 교수가 무죄에 가까운 형을 받은 데다 학교에 대한 공로가 커 징계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가 "형이 확정된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에 논의를 거쳐 곧 징계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은 "대학교수는 전문성 못지 않게 청렴성이 요구된다"며 "고려대의 이 같은 처사는 교육계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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