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연제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시청과 지방법원, 경찰청이 잇달아 옮겨오면서 부산에서도 가장 급격하게 발전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높이 치솟은 빌딩 사이를 지나 황령산쪽으로 옮겨가면 산골짜기에 무허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동네도 여전하다. 이 산동네의 이름이 물만골이다. 물이 많아 물만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 골짜기에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현재에도 4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물만골은 빈민운동과 생태공동체 운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 가난한 이들의 허름한 주택을 갈아엎고 아파트군으로 채워버림으로써 제 땅에 살던 이들을 쫓아내는 식의 무지막지한 재개발 정책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 지역의 땅을 조금씩 사들인 결과 마침내는 토박이들을 위한 생태마을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 곳 사람들은 ‘물만골 공동체’를 구성해서 땅을 공동매입 했다. 낸 돈에 따라 개인의 지분은 68평부터 230평까지 다양하지만 적게 산 사람이나 많이 산 사람이나 땅을 맘대로 처분할 수는 없다. 전체 땅을 공동지분으로 했으며 팔 때에는 공동체에만 팔도록 규약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이 공동 규약을 바탕으로 물만골 공동체 사람들은 이곳에 번듯한 집을 지어 이웃끼리 쾌적한 환경에서 살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집은 번듯하게 짓는다고 하더라도 층고는 2층을 넘지 않게 할 작정이며 대안에너지 시설을 갖추어 생태마을로 만들어낼 계획이다. 첫 단계로 골짜기의 자연습지를 살리는 물복원 설계까지 전문가에게 의뢰한 상태이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힘든 과정이 많았다. 1992년에는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려는 부산시 당국에 맞서 철거 저지운동을 벌였는가 하면 1998년 개발의 전단계로 이곳에 관통도로가 생기는 것을 역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막았다.
정부가 나서서 철거를 강제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재개발이 치부의 수단이 되어서 마구잡이로 개발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이 곳이 생태마을로 가꿔진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살아있는 교육장이 될 수 있다.
건설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2003년에 101.2%였지만 자가점유율은 같은 해 49.7%였다. 이 비율은 1995년에는 각각 86%와 53.3%였다. 보급된 주택은 1가구 1채를 넘어섰지만 집이 치부수단이 되면서 가진 자는 더 갖고, 없는 자는 있는 것조차 빼앗기는 현상이 심화했다.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을 제 땅에서 내모는 재개발이 한 몫을 했다. 여기에 맞서 물만골은 토박이들을 내쫓는 개발이 아니라 토박이들에 의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 스스로 자력갱생한 현장이 될 것이다. 도심 속 생태마을이라는 현장도 된다. 실제로 6월에는 아시아의 사회운동가들이 이곳으로 견학을 올 계획이다.
물만골에 사는 사람들은 불과 1,200여명에 가장의 직업은 일용노동자가 대다수이지만 최근에는 해외 유학생까지 생겨났다. 물만골 공동체가 나서서 부산대와 중국 상하이대, 일본 요코하마대를 ‘생태문화도시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엮어낸 결과 요코하마대가 2004년부터 기숙사와 학비를 지원하는 유학생을 매년 2명씩 받기로 했다. 이 네트워크를 엮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물만골 학생이 우선적으로 선발되고 있다. 가난하지만 집 걱정을 던 덕에 이곳에는 대학생 자원이 비교적 풍부했다.
도움을 받고만 있지는 않다. 부산에는 한 달에 한끼를 굶어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자는 ‘한끼의 식사기금’이라는 사회단체가 있는데 이 곳 회원 1,800명 가운데 480명이 물만골 식구들이다. 이들은 다달이 1만원씩을 회비로 내서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쿠바 등을 돕고 있다. 집이 치부(致富)의 수단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일 때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지 물만골은 보여준다.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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