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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6개월…40대男 달라진 삶/ "빚 독촉 사라져…일할 맛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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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6개월…40대男 달라진 삶/ "빚 독촉 사라져…일할 맛 납니다"

입력
200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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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 김모(45·남)씨는 평일 아침 7시3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촌동생의 집을 나선다. 한때 30평 남짓한 버젓한 집과 자동차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팔고 사촌동생에게 얹혀살고 있다. 지하철역까지 뚜벅뚜벅 걸어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에 몸을 실은 김씨는 옴짝달싹 하기 힘든 사람들 틈에서도 수첩을 꺼내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꼼꼼히 점검한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머릿속엔 온통 이자 만기일과 돈 빌릴 생각 뿐이었다.

잠시 회사에 들른 뒤 김씨는 본격적인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지라 한시도 자리에 붙어있어서는 안 된다. 고객 시간에 맞추다 보니 부득이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는 경우가 잦지만 혼자 있을 때는 샌드위치로 식사를 해결한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그렇게 9시간 넘게 거리에서 보낸 후에야 파김치가 돼 집으로 향한다.

"몸은 고되지만 그래도 일할 맛 납니다. 작년까지는 하루에 수십 통씩 빚 독촉 전화가 걸려오고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니느라 고객들을 만날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보험 일을 해보기는커녕 보험에 가입한 적도 없던 김씨가 이 일에 뛰어든 건 5년 전. 그는 직원 7명을 거느린 조그만 무역회사의 사장이었으나 1998년 터진 외환위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회사는 부도났고 김씨는 1억9,000만원의 빚더미 위에 앉았다.

선배의 소개로 보험설계사를 시작했지만 ‘전직 사장님’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20군데가 넘는 금융기관에서 쉴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 탓에 어렵게 마련한 고객과의 자리에서 금방 일어나기 일쑤였다. 급기야 2003년 말에는 아내와 아이들과도 헤어졌다. 빚 고통이 가족에게 옮겨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김씨가 훗날 재결합을 기약하며 이혼을 제안한 것이다.

삶을 포기하려 한 적도 여러 차례. 그때마다 11살, 7살 난 어린 두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던 김씨는 지난해 9월23일 개인회생제가 시행되자 법원을 찾았다. 그는 5년간 원금의 38%를 갚는 조건으로 12월 최종 인가결정을 받아 매월 122만원씩 갚아나가고 있다.

김씨는 "그 동안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게 가장 가슴 아팠는데 이제는 남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손으로 번 돈을 아이들 양육비로 주고 있다"고 말했다.

22일로 개인회생제 시행 6개월을 맞았다.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월말 현재 2,912건. 초기에 매월 340건 정도이던 신청건수가 최근 750건으로 두 배 늘었다. 그러나 인가결정이 내려진 것은 274건에 불과해 김씨처럼 새로운 삶을 찾은 경우는 드물다. 신청인들은 여전히 이 제도의 문턱이 높다고 불만이다. 개인이 채권자들에게 인가결정 사실을 일일이 통보해야 하는 등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일단 개인회생제가 정착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미흡한 부분은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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