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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한국의 ‘레이 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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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한국의 ‘레이 찰스’

입력
2005.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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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 지금 모두 서 있어요."

객석에서 누군가 무대를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무대 뒤에서 공연을 줄곧 지켜보던 필자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올라왔다. 앞을 보지 못하는 무대 위 주인공에게 관객들은 자신들이 기립한 사실을 알리려 했다. 무대와 객석의 벽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 자리에 감동과 흥분이 넘쳤다. 무대 위 주인공은 그 순간을 꽃피우기 위해 신산 같은 32년을 견뎌왔으리라. 겨울을 뚫고 붉은 동백이 열렸다.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의 생애 첫 공연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막을 내렸다. 전 좌석이 일찌감치 매진된 가운데 열린 두차례의 공연은 전제덕이 새롭게 세상으로 나가는 아름다운 첫발이었다. 전제덕은 객석을 향해 자신의 첫 공연의 역사적 증인이 돼주길 요구했고, 객석은 열광과 환호로 답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일제히 기립했던 관객들은 마지막 앵콜곡 ‘편지’의 연주에 숨죽여 귀 기울였다. 그리고 하모니카와 피아노가 나지막이 대화하듯 써 내려간 한 음 한 음에 가슴을 다쳤다. 객석에 불이 켜지자 눈가를 훔치는 관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공연이 끝난 후 열린 팬사인회는 장사진을 이뤘다. 자신의 사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제덕은 대충의 위치감각으로 펜을 움직여 자신의 이름을 정성스레 써 나갔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삐뚤삐뚤한 그의 사인을 부끄럽지 않게 내보였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제덕’이라고 쓴 그의 사인은 어느 뮤지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었다.

공연 중 그는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레이’처럼 자신도 그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주엽 음반기획사 JNH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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