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우량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자본의 잇따른 위협은 기업 사냥꾼들이 경영권을 담보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실상의 ‘그린메일 공세’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에선 ‘포이즌 필’이나 ‘황금낙하산’ 같은 대응책이 부상하고 있다.
2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주 행동주의의 국내외 비교와 정책시사점’ 보고서에서 "1970~80년대 미국에서는 기업 사냥꾼들이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를 위협, 보유 주식을 시세보다 높게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그린메일’ 사례가 성행했다"며 "국내에서도 외국계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이러한 ‘약탈형 주주행동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적절한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외국인들이 국내 최대주주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한 주요기업은 53개이며 단일 외국인 지분율이 5% 이상인 기업만도 150개에 달하는 등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언제든지 수익률 게임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다. 특히 소버린이나 헤르메스 같은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투자목적 자체가 단기에 고수익을 실현하는 것이어서 인수·합병(M&A) 위협이나 부당한 경영간섭 등과 같은 ‘기업흔들기’를 통해 반대 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미국에서도 굿이어, 월트디즈니 등이 ‘그린메일’의 희생양이 되다가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가 도입되면서 주주행동주의가 약탈형에서 기업가치 제고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포이즌 필'이란 유사시 기존 주주에게 저가의 신주 매입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적대적 M&A의 독약처방으로 불린다. ‘황금낙하산'이란 경영권 이전으로 인한 임원 퇴임 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토록 함으로써 기업사냥꾼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제도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경영권 방어제도가 취약한 점을 이용, 경영진을 쉽게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상의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도입이나 소유지배구조 공개와 같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제도를 지나치게 강화한 나머지 국내자본시장이 해외투기펀드들에게 머니게임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며 "국내 증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종합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그린메일
기업사냥꾼이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유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라고 권유하는 편지를 보낸 데서 유래됐다. 상장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경영진을 위협, 적대적인 인수·합병 등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들이 확보한 주식을 시가보다 높은 값에 되 사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표면적으로는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지만 속 뜻은 주식을 비싸게 사 달라는 의미여서 미 달러 지폐의 색깔인 ‘초록색’을 붙여 ‘그린메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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