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5세기에 이르러 큰 변화를 맞았다. 페스트와 대기근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고, 동방 문물이 활발히 유입되면서 유럽인의 관심이 종교적 신앙에서 세속적 물질로 크게 옮겨간 것이다. 이런 요인이 화려한 르네상스를 탄생시켰고, 마침내 동서양의 문명적 우열을 뒤바꿔 놓았다. 인구감소가 부정적 신호만이 아니라 긍정적 예고일 수 있다는, 일본 저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통찰이며 주장이다.
그 전까지 유럽인은 산업에는 흥미가 적고 성유물(聖遺物) 수집 등 종교생활에 열중했다. 이탈리아 인구는 1340년의 940여만 명에서 1500년에는 550만으로 감소했다. 40% 이상 줄었다. 사람들은 점차 척박한 토지를 버리고 경제성 있는 지역으로 옮겨갔다. 곡물가격에 비해 임금수준도 높아져 엥겔계수가 낮아져 서민도 미술품을 살 여유가 생겼다. 이런 요인들이 수공업과 경제를 발전시켰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화가가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미술 중흥에 따라 사물을 탐구하는 과학정신도 높아졌다.
정부가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1.19명)을 높이고 노령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20년부터는 인구가 급감하고, 초고령사회가 되어 미래가 암울해진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유럽을 보면 이런 전망과 대응은 너무 일방적이고 근시안적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 우리의 인구현실과도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487명/㎢(2002년)로 인구조밀국가다. 나라마다 통계연도가 달라 약간씩 오차가 있으나, 도시국가나 아주 작은 나라를 제외하면 방글라데시 836, 대만 590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복잡한 나라다. 일본도 높은 편으로 336, 북한은 183, 중국 127, 미국 28이다. 또한 선진국은 22, 개발도상국 55, 아시아 109, 세계 42이니까 우리가 얼마나 갑갑한 땅에서 사는 지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은 정말 출산율을 높여야 할 때인가. 인구밀도를 더 낮출 때는 아닌가. 10년 전만 해도 자녀를 적게 낳는 것이 공동체를 위하는 길인 줄만 알았다. 당국은 근년 들어 별안간 출산 장려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사회와 산업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인구급감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토와 인구, 산업규모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이상적 목표치를 정하고 인구정책을 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인구감소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해당된다.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선진국의 인구가 줄고 있고, 개도국·저개발국의 출산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50년 이후는 세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안심이라는 말이 아니다. 국가는 인구를 국력의 한 요소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명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자연적 인구감소를 계기로 인구 과밀국이라는 한계와 멍에를 벗어 던지자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에서 먼저 염려되는 점은 고령자는 늘고 젊은 노동인구는 주는 현상이다. 국가 생산성이 줄고 사회·경제적 부담이 무거워지므로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60대가 돼도 대부분 건강하고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고자 애를 쓴다. 앞으로는 고령자의 근로의욕을 북돋아 삶의 활력을 찾아 줘야 한다.
인구감소를 잿빛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다. 과거 이탈리아는 인구감소가 오히려 경제적 번영과 문예부흥을 가져왔다. 사카이야의 주장대로 사유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많은 인구 때문에 논밭을 뭉개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20세기적 반(反)자연의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 저 수많은 아파트들을 부수고 대지나 숲과 같은 높이에서 삶을 영위하는 문화와 미래를 가질 수는 없을까?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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