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최근 서울역 매표소에서 역무원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부산에 가기 위해 K TX 요금 4만5,000원을 현금으로 낸 뒤 소득공제용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청했지만 "아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영업자들은 소비자의 눈이 무서워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에 앞 다퉈 나서고 있는데 공기업인 철도공사가 현금영수증 발급을 여태껏 외면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올 1월 실시된 현금영수증제에 대해 대부분의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등이 석달째 가맹점 가입을 미루고 있어 이용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민간업소는 영수증 발급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자발적으로 가맹을 서두르고 있지만 정작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등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현금영수증 발급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현금영수증제는 소비자가 상품이나 용역 구매 시 현금으로 지불해도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영수증을 발급하는 제도. 소비자들은 5,000원 이상 구매시 신용카드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가맹점인 업소에서 현금영수증 사업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승인받아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시민상대 홍보가 부족한 데다 가맹점 가입 업소 수도 적어 제도 정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국세청은 시민들에게 홍보 전단지를 나눠 주고 가맹점 확대를 위해 영세 자영업자까지 일일이 방문해 가입을 권유했다. 이에 따라 민간업소의 가맹점 수는 시행 초기인 1월 초 61만여 곳에서 지난달 말 91만여 곳으로 50%가량 급신장 했다.
하지만 정부기관과 공기업은 현금영수증 발급에 대해 ‘강건너 불구경’ 꼴이다. KTX 승차권을 판매하는 철도공사를 비롯해 이용자들이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하는 우체국, 하루 수만명이 면허신청 요금을 내며 응시하는 운전면허시험관리단, 500여개에 달하는 각종 자격증 시험을 관리하는 산업인력공단 등에서는 아직도 현금영수증제를 거부하고 있다.
또 주택신용 보증료를 받는 주택금융공사와 전기안전 점검료를 관리하는 전기안전공사 등도 모두 소득공제를 위한 현금영수증 발급대상 기관인데도 가맹점 가입은커녕 이에 대한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 기관이 현금영수증제 가맹 대상에 해당되는지 몰랐다"며 "조만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시민의 소비생활 중 공기업과 관련된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이런 기관들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으면 납세자들이 연말 소득공제 시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영수증제는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목적이 크기에 공기업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공기업 부분도 가맹점 가입을 서두르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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