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재능과 미소년 같은 외모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 피아니스트가 협연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격분시켜 공연이 무산될 뻔했다. 20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임동민(25) 동혁(21·사진) 형제의 쇼팽 협주곡 릴레이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영민이 지휘하는 서울클래시컬플레이어즈가 협연한 이 공연은 국제 콩쿠르를 휩쓴 형제가 한 무대에 선다 해서 화제였고, 19일 안산에서도 같은 공연이 있었다.
사건은 동생인 임동혁의 리허설 중에 벌어졌다. 피아노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 지휘자가 물었다. "왜 템포를 그렇게 하지요?" 그러자 임동혁이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하는 얘기예요?" 단원들 앞에서 싸우는 게 싫어서 지휘자가 독일어를 썼다. " ‘Hoeflichkeit’ 란 말 알아요?" "몰라요." " ‘예의’ 란 뜻입니다." 순간 임동혁이 피아노에서 벌떡 일어나 악보를 내던지고 피아노 뚜껑을 쾅 닫으며 소리를 질렀다. "나, 너랑 안 해." 그리고는 뛰쳐나가며 다시 소리쳤다. "저 XX 뭐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격분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연주할 수는 없다’고 판단, 서울로 돌아가자고 결정했다. 공연시작을 1시간 남기고 단원들은 버스에 탔다. 일이 커지자 임동혁의 어머니가 아들을 끌고 와서 사과하라고 했다. 임동혁은 거부했다. 결국 버스는 출발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갔다가 그래도 청중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되돌아와 공연을 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앙코르를 하러 무대에 나온 임동혁이 "오늘 지휘자 선생님이 삐치셨어요." 라고 했고 그 말에 청중들이 웃었다.
이 구차스런 내용은 그 자리에 있었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기획사 관계자의 말을 옮긴 것이다. 임동혁 아버지의 설명은 다르다. 임동혁이 무례를 범한 게 아니라, 지휘자가 먼저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휘자가 인사조차 받지 않는 등 줄곧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연습기간 사흘 내내 음악적 고문을 했다. 대전에서도 일방적으로 리허설을 끊고는 ‘당신 같은 아티스트와는 연주 못한다’며 나가버렸다"며 "오히려 우리가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쌍방의 주장이 엇갈리니 누구 잘못인지 명확히 판단하기도 어렵다.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했고,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판을 깼다고 주장한다.
연습 중 의견충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게 감정싸움까지 번지면 막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청중 앞에서까지 지휘자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분명히 결례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지나치게 스타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연시장의 일그러진 풍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획자도 청중도 스타에만 매달리다 보니 협연하는 오케스트라는 헐값에 부리는 찬밥 신세가 되곤 한다. 서울에서 내려간 국내 유명 연주자가 지방 교향악단과 협연할 때 오케스트라를 무시하고 멋대로 대충 연주하는 태도를 보여 관객의 비난을 사는 일도 드물지 않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연주자도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악단과 협연할 때도 그들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음악을 만듦으로써 더욱 존경을 받는다. 영국의 유명한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쓴 책에 ‘누가 클래식음악을 죽였는가’ 가 있다. 상업주의가 만연하는 풍토를 통렬하게 비판한 이 책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스타 시스템이 클래식음악을 죽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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