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대화는 시종 부드러웠다. 그러나 김정일이 신의주 특구를 꺼내자 썰렁해졌다. 장쩌민은 ‘신의주에 특구를 만들어 봐야 가난한 동북 3성에서 물건을 사줄 수 없다. 개성에 특구를 만들어 남한에 물건을 팔아라’고 했다. 언쟁도 있었다. 장쩌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신의주 특구 추진을 발표하자 중국은 특구행정관으로 임명된 양빈을 가차없이 구속했다."
얼마 전 만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 관계자가 2001년 9월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회담을 전한 내용이다.
형제국가도 영토나 민족문제가 걸리면 안면을 몰수하는 냉엄한 현실이 실감나게 와 닿는 대목이다. 중국은 그랬다. 북한의 혈맹이지만 동북 3성의 조선족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의주 특구를 철저하게 분쇄했다. 그런 중국을 미국의 대안으로 고려해보자는 목소리가 한 때 정치권에서 나왔으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없었더라면, 일본과 대립하는 요즘 중국과 손잡자는 외침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어떤가. 친구가 되기에는 악연이 많고 믿음은 적다.
결국 눈길은 동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일본이 있고 그 너머에 미국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 우리를 분노의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반발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오만함 마저 느껴진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미국과 멀어진 한국, 그만큼 미국과 가까워진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이 있던 2000년 6월8일의 도쿄로 가보자. 각국 정상들의 조문 외교가 활발한 상황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시종 예우했다. 쇄도하는 회담 요청을 뒤로 하고 김 전 대통령을 우선적으로 만났고 장례식장, 리셉션장에서 맨 나중에 함께 입장했다. 클린턴이 이러니 상주인 모리 요시로 당시 일본 총리도 다른 정상의 입국 때 해당국 주재 대사를 내보냈지만 한미 정상들에게만은 외무장관을 보내 영접했다. 지금은 역으로 우리가 한 발 떨어져 미일의 동행을 쳐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도 끼어달라고 미국에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인식해야 할 점이 있다. 부질없이 미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후반 노무현 대통령이 유럽 방문 때 프랑스를 칭찬하기 위해 미국을 비판한 적이 있다. 프랑스만 칭찬하면 될 일이었다.
신중한 언행만으로 한미 동맹이 공고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감정적 골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때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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