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번역 소개된 ‘가상 역사 21세기’(마이클 화이트· 젠트리 리 공저, 이순호 옮김, 도서출판 ‘책과 함께’, 원제: A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Y)는 독특한 형식의 미래서다. 저자들은 2112년의 시점에서 지나온 100년의 역사를 서술한다. 유전공학과 인터넷이 안겨 준 인간생활의 질적 변화, 핵전쟁, 대공황, 패권국가의 부침,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뤄지는 우주여행 등등. 21세기의 ‘있었던 역사’가 탄탄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 독도 문제와 최근 동북아 정세의 난기류 탓일까. 책 내용 중 번쩍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21세기 말 한국의 생활수준과 1인당 국민 총생산액이 일본을 앞질렀다. 첨단기술에 기반한 탄탄한 경제와 중국의 거대한 경제우산 속으로 능동적으로 편입하는 기민함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결과다. 이에 앞서 중국은 발전을 거듭, 2030년에 군사력 면에서 세계일류가 되었고 21세기 말에는 모든 면에서 미국과 동등해졌다. 반면 일본은 주력산업들을 중국에 빼앗기면서 쇄락을 거듭, 어느 한 분야에서도 더 이상 세계강국이 아니었다.
■ 중국의 팽창은 동북아의 전략지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 심화, 충돌시의 엄청난 피해 등을 들어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강대국들이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는 낙관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무정부적인 국제질서의 속성상 중국의 패권 추구는 필연적이며 이미 패권적 지위를 확보한 미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번 한·일·중 순방 길에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과 협력해 중국의 패권 팽창을 견제하려는 구상이다. 미국과 일본이 최근 동맹체제를 한층 강화하고 대만해협의 안정을 공동 안보 목표로 선언한 것 등에서 그 같은 의도가 더욱 뚜렷해진다. 문제는 거대한 두 패권 대결 사이에 꽉 끼여 있는 우리다. 어느 쪽에 서야 하느냐는 질문은 너무 단선적이다. 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21세기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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