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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발 & 에스페리옹21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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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발 & 에스페리옹21 공연

입력
200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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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양음악계의 가장 큰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옛 음악 부활운동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과거의 작곡가들이 어떤 소리를 의도하고 어떤 악기를 연주했을까라는 고고학적인 관심을 넘어서서 옛 악기의 음향과 옛 음악의 어법을 습득하여 오늘날의 음악적인 표현을 다양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21 또한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12세기 갈리시아의 음유시인 마르틴 코닥스의 ‘칸티가스 데 아미고’에서부터 아랍과 유태 음악을 거쳐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음악의 근원이 되는 수백 년에 걸친 다채로운 음악의 뿌리를 탐구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와 어법은 분명 과거의 것이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음악은 분명히 현재적이다. 에스페리옹 21은 과거의 음악이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전통이라는 사실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웅변하고 있다. 또한 중세 유럽음악과 영향을 주고받았던 여러 문화권의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이 갖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

두 가지 비올라 다 감바와 아르파 도피아(옛날 하프), 테오르보(저음 류트), 다르부카(아랍의 작은 북)를 비롯한 다양한 타악기가 합주하는 장면은 옛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에게 진귀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오랜 동료인 하프의 앤드류 로렌스 킹과 테오르보의 에두아르도 에구에즈가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조르디 사발은 신중하면서도 빛나는 활놀림으로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옛 타악기 주자, 페드로 에스테반의 신들린 듯한 손놀림은 어떤 단순한 악기도 예술 그 자체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조르디 사발의 부인이자 음악적 동료로서 30년 이상 옛 음악 부활에 힘을 쏟은 소프라노 몬세라트 피구에라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젊고 청아했다. 그녀가 부르는 이베리아와 지중해권의 유대인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색채와 강한 호소력으로 청중을 감동시켰다.

에스페리옹21의 이번 내한 연주는 너무 학구적이지도, 너무 대중적이지도 않은 세심한 선곡이 돋보였는데 앞으로 남은 순회연주에서 매번 조금씩 다른 선곡을 들려준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과거를 돌아보고 다양한 문화의 근원을 탐구함으로써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옛 음악 운동의 중요한 성과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21의 연주회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주변 문화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지영 음악 칼럼니스트 고음악 전문 홈페이지 AntiquEvangelist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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