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산업으로 보나 예술로 보나 한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다른 예술 장르는 시대상을 잘 포장해서 속일 수도 있지만, 건축은 그렇지 못합니다. 건축을 읽으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 보입니다. 의식수준, 생활방식, 가치관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읽을 수 있지요."
오늘(21일)부터 매주 월요일 기획연재 ‘건축, 우리의 자화상’을 시작하는 임석재(44)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한 시대와 문화의 총체적 표현으로서 건축과 건축 환경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건축가의 작품으로서 건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임 교수는 서양건축사와 한국 전통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다.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사,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갖고 그 동안 5권 예정으로 쓰고 있는 ‘서양건축사’ 중 첫 2권과 ‘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 ‘한국 현대건축 비평’ 등 2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그가 보기에 오늘 우리사회의 건축 풍경은 많이 일그러져 있다. "건축이 생활환경 만들기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집만 해도 사람을 포근히 감싸는 기능을 잃어버리고 돈만 되면 언제든 팔고 떠나는 물건이 되어버렸죠. 개인의 소외도 심각합니다. 최근 들어 건축의 공공성 개념이 많이 강조되고 있지만, 개인을 보살핀다는 궁극적인 목표와는 반대로 개인을 떨쳐버린 채 겉만 번지르르한 대형화가 일반적이죠. 고속철 역사, 대형 쇼핑몰, 골프 연습장 등을 보세요. 개인을 전혀 돌보지 않는 이런 공간은 그저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곳일 뿐, 사람을 위한 건축이라고 할 수 없지요."
오늘날 건축양식에서 우리만의 정서가 밴 것을 찾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유행한 양식이나 후기산업사회의 상업주의 건축양식이 난무하고 있어요. 우리의 의식 밑바탕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정서가 남아있는데 말이죠. 부동산 투기심리도 따지고 보면 왕이 신하들에게 충성의 대가로 나눠준 땅으로 신분상승과 부의 축적을 꾀하던 왕조시대의 유교적 관념이 오늘날 민주주의가 절대권력을 대체하면서 자본주의와 결합한 결과로 보입니다."
임 교수는 우리의 자화상으로서 건축환경 중에서도, 특히 상업공간에 관심이 많다. "도시의 중심은 정신적 공간이 되어야지 상업 건물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죠. 지하철 역 단위로 형성되는 부심을 보면 대형상가가 그 주변 지역을 지배합니다. 물질이 정신적 가치를 대체하는 이러한 물신화 현상을 진작에 겪은 서구도 우리만큼 심하지는 않습니다. 서구에서는 지금도 정신적 상징인 ‘성당’이 도시 중심을 차지하고, 상업공간을 만들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거든요. 반면 우리사회에서 상업공간의 광포한 지배는 고삐 풀린 망아지 상태입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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