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마구 흔들려서 깜짝 놀랐어요." 20일 오전 부산 광주 서울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건물이 짧게는 수십초에서 길게는 1분가량 심하게 흔들리는 지진이 발생,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특히 진앙지에서 가까운 부산 경남 지역에선 건물이 흔들리면서 불이 나거나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고층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가 흔들려 현기증을 심하게 느낄 정도였다. 서울지역에서도 조용한 고층 식당이나 사무실 등에서는 좌우 5-10cm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경남 통영시에서는 이날 오전 10시55분께 서호동 재래시장내 2층짜리 목조 상가건물에서 불이 나 1, 2층 1,000여㎡를 태워 2억9,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2시간여 만에 꺼졌다. 의류와 신발 등 28개 점포가 입주한 이 건물은 대부분 전소되면서 아래로 폭삭 주저앉았으나 휴일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길 건너편에서 식육점을 하는 서모(46)씨는 "갑자기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순간 거의 동시에 건물 안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서는 지진 여파로 건물 내 전선끼리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어 인화 물질로 옮겨 붙으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비슷한 시각 부산 부산진구 D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김모(25·여)씨 등 4명이 갇혀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원에 의해 30여분 만에 구조됐다. 경찰은 지진충격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오모(29·여·부산 해운대구 좌동)씨는 "갑자기 고층 아파트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소파 위에 있던 아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액자까지 떨어져 깜짝 놀라 아기를 안고 1분 이상 꼼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홍모(41·경기 이천시 백사면)씨도 "아파트 12층 집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20초가량 아파트가 두 차례 이상 좌우로 흔들리면서 심한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남동해안 저지대 주민들은 한때 해일 경보가 발령돼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를 떠올리며 당국에 대피 여부를 묻는 등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이날 진앙지에서 가까운 지역이었던 경남도청 3층에서 근무를 서던 이모(40·경남 창원)씨는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사무실 집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계속되는 흔들림으로 현기증이 나 속이 메스꺼웠다"고 말했다. 부산 L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하모(51·여)씨도 "매장 안에 진열돼 있던 마네킹과 옷가지 등이 쏟아져 내렸다"며 "혹시나 해서 승강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양모(36)씨는 "일본 유학시절 지진을 겪어 본 뒤 한국에서 실제 지진을 느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하지만 일본과 달리 TV에서 속보가 바로 뜨지 않아 한동안 두려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생산기기가 흔들릴 경우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되는 초정밀 반도체·LCD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 LG필립스LCD, LG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 전자업체는 다행히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울산 지역에 생산시설이 밀집한 SK㈜, 에쓰오일, 삼성석유화학 등 정유·석유화학업체들도 지진 발생 후 시설 이상 유무를 점검했으나 피해는 없었다.
부산=이동렬기자 dylee@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 기상청‘늑장 대응’/"1시간넘게 정보 없어" 홈피 클릭 시민들 분통
20일 오전 지진이 발생하자 시·군청과 소방서, 기상대 등에는 "지진이 어디서 일어났느냐. 피해상황은 어떻게 되느냐"는 등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시민들의 전화가 폭주했다. 일부 시민들은 기상청 홈페이지에 접속을 시도했으나 지진 발생 후 1시간이 지나도록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어 발을 동동 굴렀다.
기상청측은 "지진 발생 직후인 11시 10분께 관련 공지사항을 올렸다"고 해명했지만 시민들은 "늑장 대응을 하고 발뺌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정명씨는 기상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홈페이지에서 공지사항을 본 것은 오후 1시20분이 다 됐을 때"라며 "아무런 사과없이 슬그머니 올려놓고 국민들이 보지 못한 것처럼 발뺌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부산 전포동에 사는 네티즌 ‘선재’씨는 "집이 무너져 아이들과 죽는 줄 알았다"며 "세상에 정보가 이렇게 늦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항의했다. 기상청은 이에 대해 "지진 발생 10분만인 오전 11시에 소방방재청과 언론사에 지진속보를 보냈다"며 "기상청 홈페이지는 재해 발생 통보수단의 1순위가 아니어서 관련정보 게재가 약간 늦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피해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KBS ‘늑장 보도’/ 54분후에야 뉴스 속보 "시청료 왜받나" 항의빗발
‘54분’ 동안 공영 기간방송은 없었다.
20일 오전 일본 후쿠오카 북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부산 경남 제주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휩싸였으나 KBS는 54분 뒤인 오전 11시47분에야 정규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 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내보냈다. 우리 방송가운데 가장 일찍 지진 발생 사실을 보도한 MBC도 오전 11시32분에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반면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지진 발생 1분여 만에 자막을 내보내 우리 방송과 극명히 대조됐다. 이 같은 방송의 늑장 보도에 대해 시민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기상재해 등이 있을 경우 모든 정규프로그램을 접고 신속히 재해방송을 내보낸다"며 "우리 방송은 아직도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네티즌 신민정씨는 KBS 시청자게시판에 "지진이 일어났는데도 계속 정규방송을 내보내 오히려 일본 NHK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고 적었다. 한상혁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나태함과 안전불감증에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리려나"라고 한탄했고, 박정식씨는 "시청료는 왜 받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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