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미국은 5월 10, 11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리는 양 지역권 정상회담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를 희망해 왔다. 회담이 미국 성토장이 되는 것을 의식한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석유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두 지역간 경제블록을 구축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나 반미성향이 강한 두 지역이 정치·경제 전반에 대한 결속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더 짙다는 분석이다. 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2003년 중동방문 당시 "아랍-중남미 경제블록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브라질은 미국의 참관요구를 수용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외교당국은 "심사숙고하고 있으며, 다른 참가국들과 논의한 뒤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득실 계산이 쉽지 않다"는 난감한 표정이다.
미국이 참석하면 룰라 대통령이 추구해온 ‘남남협력’의 성과로 평가되는 이번 모임의 선명성이 흐려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거부하면 부담은 고스란히 룰라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이 경우 회의 성격이 반미로 굳어져 현재 초청장만 보내진 상황에서 아랍권이 얼마나 참석할지도 불투명해질 위험이 있다. 지난달 초청장이 카타르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쿠웨이트 튀니지 알제리 등 20여 개 국가에 전달됐지만 참가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아랍권은 이스라엘 강경노선에 한목소리를 내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현지 분위기는 "미국의 참가는 회의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대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미국의 요청은 집권 2기를 맞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실상 첫 ‘남미외교’란 점에서 주목된다. 좌파연합이 형성되는 남미에 대해 미국이 ‘긴장’을 선택할지, 아니면 ‘달래기’에 나설지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남미의 대표적 좌파주자인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는 남미 지역주의를 강조하며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 미국의 뒤통수를 치고, 중남미를 통합하려는 미국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추진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