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종전 후 소련의 팽창 정책에 대응하는 봉쇄 정책 개념을 고안, 트루먼 독트린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냉전 시대의 전략가 조지 케넌이 17일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가족이 발표했다. 향년 101세.
케넌은 평생을 미국의 외교관, 사학자로 활동하며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했다.
케넌은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1946년 미ㆍ소 대결의 본질을 예견한 ‘장문의 전보(Long Telegram)’란 글로 반향을 일으켰으며 워싱턴 국무부에 재직하던 이듬해 ‘포린 어페어스’지에 X란 필명으로 글을 써 ‘봉쇄’라는 중추 개념을 소개했다.
소련의 팽창주의가 작용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미국의 능력으로 막아야 한다는 게 봉쇄 이론의 핵심을 이룬다. 이 이론은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뤘으며 미 국내적으론 1950년 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몰고 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이론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으로서의 그의 경력은 순탄하지 않았다. 1949년 딘 애치슨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영향력을 잃은 그는 독일 통일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상급자들과 마찰을 빚은 끝에 1950년 휴직하고 프린스턴 대학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이 개입하기 직전 유엔군이 북한 지역에서 철수,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1951년 유엔에서 소련 대표단과 수차례 접촉한 것이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했다. 1952년 모스크바 대사로 임명됐으나 1년 안에 ‘기피인물’ 선언을 받았고 1953년엔 존 포스터 덜레스 신임 국무장관과의 이견으로 외교관 직을 떠났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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