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이상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순간이 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달릴 의욕이 몸을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에너지원으로 쓰인다는 글리코겐이 완전히 고갈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 달리기 초보자들은 뭔가를 먹어야지 다른 도리가 없다.
지난해 가을 러닝용 셔츠 구입을 위해 체육용품점에 들렀더니, 이미 풀코스에도 여러번 도전한 경험이 있는 주인이 20㎞ 지점 이후에 먹어야 소모된 글리코겐을 보충할 수 있다며 ‘파워젤’이란 것을 권한다. 이 조그만 것이 엄청난 힘을 준다고?
‘스마트 식품’이 생각났다. 미국 군사과학자들은 하루동안 병사에게 필요한 영양물과 칼로리를 제공할 수 있는 카드 크기의 휴대식량을 개발하려고 한단다.
2015년쯤에는 보통사람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영양물이 들어 있는 감기약 크기의 스마트 식품 개발을 낙관하는 과학자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상상도 가능하다. 여자친구와 근사한 ‘스마트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문하면 신속하게 카드 크기의 스테이크가 배달된다. 맛과 영양도 손색이 없고, 향취도 그만이다. 칼로 썰고 포크로 찍어먹는 수고로움까지 줄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으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빠른 게 목적인 마라톤에서야 파워젤을 먹는다 하더라도 데이트 시간에 스마트 식품은 어울리지 않는다. 가족들의 식사시간도 단순히 먹는 시간만은 아니다.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으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효율성이 다는 아니다. 과학은 흔히 그 대목을 간과한다.
김보일 배문고 교사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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