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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장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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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장 외교

입력
2005.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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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외교’(market place diplomacy)라는 말이 있다. ‘시장 경제’와 비슷한 맥락 같지만, 시장바닥에서 외치는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는 외교 행태를 뜻한다. 장바닥 또는 장터 외교가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전통적 비밀외교 관행이 20세기 들어 공개 외교로 바뀌면서, 냉철한 외교전략적 판단보다 여론을 먼저 의식하거나 이용하는 데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힘들고 지루한 외교협상보다 즉각 여론의 반향을 낳는 연설과 성명을 통한 외교를 선호하면서 두드러진다.

■ 외교사 연구가들은 19세기라면 당장 무력충돌로 치달을 직설적 언사를 삼가지 않는 ‘장바닥 외교’의 바탕을 대중사회의 특성인 대중정치에서 찾는다. 정치 지도자들이 냉정하게 국익을 좇는 분별과 절제를 지키지 않고, 대중의 애국적 지지를 유인하기 위해 선동적 언사를 즐겨 쓴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 간 갈등을 실제 국익에 유리한 외교로 풀지 못하고, 과장된 적개심과 그릇된 자신감을 부추기다 끝내 국익과 국민을 모두 희생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이 정치 엘리트와 대중이 각기 왜곡된 의도와 정서로 내몰고 휘둘려 합작한 비극이란 평가는 결코 한갓진 것이 아니다. 국가 역량을 넘어선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데 탁월했던 전체주의 국가의 무모함이나 오늘날 강대국의 부도덕성을 시비하는 변방의 논리인 것만도 아니다. 어느 시대 어떤 지도자와 대중도 쉽게 유혹되고 휘말리기 쉬운 ‘장바닥 외교’를 늘 경계하라는 충고다. 외교사의 권위 알브레히트-카리에가 사회와 외교의 천민(賤民)화를 논한 것도 이런 맥락인 듯싶다.

■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국민과 정부가 함께 분노하는 것을 감히 시비하느냐고 화낼 것이다. 사악 무도한 일본의 영토 침탈에 맞서는데 무슨 분별이고 절제냐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일개 자치단체인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이 우리의 실효적 지배에 아무런 법적 영향이 없다면서, 국가안보회의 성명으로 주권 침탈을 외치고 국가 독트린을 천명하는 것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더욱 경계할 것은 북한 문제와 동북아 정세 변화 등 난제를 헤쳐나가야 할 정부가 밖으로 헛되이 목청 높이면서 안으로 여론의 지지만 노리는 것이다. 일본과의 우호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냉정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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