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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 인류역사는 정착민과 '떠도는 자'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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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 인류역사는 정착민과 '떠도는 자'의 투쟁

입력
2005.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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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머문 자’들의 손에 의해 기록됐으나, 그 역사를 이룩한 것은 ‘떠도는 자’의 몸이었다. 머문 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국가와 세금과 감옥의 힘으로 떠도는 자의 혁신적 도발을 짓밟았고, 그들이 창조한 불과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의 성취를 전유(專有)했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저서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에 펼쳐놓은 주장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역사의 표면적 승자인 ‘머문 자’의 사관을 버리고, 그들이 야만과 불순의 낙인을 찍어 봉인했던 ‘떠도는 자’를 복권시켰다. 이 노작의 첫 페이지는 "떠나는 사람들은 경이로우니…"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노마드(nomad·유목)’가 시대의 키워드로 자리한 것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년)에 기점을 둘 경우, 근 40년에 이른다. 그 사이 노마디즘(nomadism·유목주의)은 여러 서구 석학들의 사상적 변주를 거치며 단순한 개념어가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그것은 고전적인 공간이동 개념을 넘어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는 창조적 행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노마드, 정착의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거듭하는 사회·경제적 노마드’로 확장됐다. 그 한 가운데 자크 아탈리가 있었다. 그는 1997년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사이버 유목민이라는 의미를 지닌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를 선뵌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노마디즘의 스펙트럼을 600만년 인류사로 다시 한번 확장했다.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인간의 역사가 노마드적인 것이 되기 훨씬 전에, 아메바에서 꽃으로, 생선에서 새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한 생명의 역사 자체가 이미 노마드적이었다." 그는 풍부한 사료를 근거로 고대 원시사회와 중세 봉건사회, 근대 국가시대와 중상중의, 세계자본주의 등의 지난 역사를 시대별 정착민과 노마드의 대립과 투쟁의 과정으로 고찰한다.

또 마지막 정주성 제국인 미국과, 강력한 노마드 세력인 ‘시장’‘이슬람’, ‘민주주의’의 대결국면으로 현재의 세계화 과정을 설명한다. 그 갈등의 뿌리는 반복돼 온 역사가 말해주듯 하이퍼노마드(예술가 등 지적자산가)들과 인프라노마드(빈곤층노마드)의 격차에 있고, 2001년 9·11테러는 그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그는 이 ‘거대한 무질서’ 너머의 세계 정부의 동력을 트랜스휴먼, 즉 정착민적 덕목과 노마드적 덕목을 두루 갖춘 신인류에 기대며, 새로운 생활양식은 지구의 허파인 숲을 지키며 인류의 문화와 지혜를 묵묵히 전달해 온 원시부족들에게서 얻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크 아탈리의 이 인류 오디세이가 매력적인 것은 그가 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가치 지평과, 변화와 지향의 건강한 관점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여정에 동참하는 일은 얼마간 땀 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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