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리에서 낯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다정하게 얘기라도 몇 마디 걸어준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사람은 행복해진다.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복거일씨는 청소년을 위해 썼다는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를 그 행복한 판타지, 즉 참 이름을 불러주면 나무와 풀 가축과 짐승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힘을 빌려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봄날에 밝은 웃음으로 모두를 즐겁게 하는 풀’아. 씨들이 다 자라서 떠나니, 마음이 어떠니?" 자신의 참 이름을 들은 민들레는 잔잔한 미소로 대답한다. 그 ‘편안한 만족’과 ‘따스한 자랑’의 화답에, ‘숨은 나라’의 마지막 남은 병아리 마법사 ‘민이’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는 ‘한줄기 서글픔’도 본다. "씨앗을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민들레가 엄마를 생각나게 한 것이었습니다."
소설은 민이가 진짜 마법공부를 위해 여행을 떠나 겪게 되는 세상과 사람들, 모험과 전쟁의 이야기다. 세상은 이미 힘든 마법 대신 편리한 기술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세상은 더럽혀지고 망가져간다. 아버지에게서 마법의 첫걸음인 ‘참 이름’을 알아내는 법을 배운 민이는 그 힘으로 ‘잎새가 넓어서 시원한 그늘을 사람들 머리 위에 드려주고 꽃이 고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나무(오동나무)’며 ‘벼슬이 곱고 목청이 좋은 새(닭)’ 등을 사귀면서 모진 기술이 안긴 상처들을 치유해준다. 그 과정에 민이는 "더러운 물을 퍼내려면, 더러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손에 더러운 물을 묻혀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자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익힌다.
소설은 그렇듯 아름답기만 한 동화의 세계를 그리지 않는다. 민이는 "어린아이들이 알아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리고 "이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끝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삶은 "참나무가 도토리 속에서 살아 남아서 나중에 새로운 참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어지는 것임을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명을 찾아서’(1987)로 우리 문학의 한 획을 그으며 등단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십 대를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소설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어린아이들이 알아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그리고 당당히 내보이며 사는 어른들이 잠시 시간을 되짚어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 같기도 하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