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에는 질 수 없다’
외환보유액 운용을 놓고 한국은행과 한국투자공사(KIC) 간에 전면적인 수익률 경쟁이 사실상 시작됐다. 선의의 경쟁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자칫 ‘국가 비상금’을 놓고 두 기관이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국투자공사는 최근 국회에서 통과한 관련법에 따라 재정경제부 차관 등이 설립준비위원으로 참여해 올 상반기중 출범한다.
한은은 17일 외환보유액 운용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력 조직 관리방식 등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재 66명인 외화자산 운용인력을 100명 이상으로 대폭 늘리면서, 연봉을 더 주고서라도 외부전문인력을 영입할 방침이다. 자산운용실적이 좋은 직원들에겐 별도 성과급도 지급키로 했다. 아울러 현 1국1실의 조직을 2국1실 혹은 3국체제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 시대를 맞아 운용의 수익성에 역점을 둠으로써 보유액이 늘어날수록 수익률도 높아지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은 달러당 1,000원 환율방어를 위한 대규모 시장개입으로 이 달 들어서만 47억 달러나 증가, 15일 현재 2,068억 달러를 기록중이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은 지금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운용결과를 공개하는 이스라엘(4.96%)이나 호주(4.97%)의 중앙은행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세계적 투자은행(IB)들의 투자기준수익률(7.7%)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이 투자리스크가 적은 A등급 채권에만 투자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은의 실질수익률이 오히려 IB들보다 높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외환인력·조직을 더 늘려 수익을 더 높이겠다고 나선 것은 다분히 KIC를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사실 한은은 처음부터 외환보유액 일부를 떼어주는 KIC설립에 반대했고, KIC에 170억 달러(외평기금 30억 달러는 별도)의 위탁이 확정된 지금도 이런 입장엔 변함이 없다. 한은의 반대 이유가 ‘지금도 고수익을 내는데 굳이 왜 KIC를 만드냐는 것’이었던 만큼, 한은으로선 KIC에 대한 수익률 우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만약 ‘햇병아리’ 조직인 KIC보다도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향후 정부로부터 외환보유액 추가위탁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KIC도 부담은 마찬가지이다. 설립이유를 증명하려면 한은보다 고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더구나 KIC는 수익률도 공개된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은과 KIC는 같은 자산(외환보유액)을 놓고 자존심을 건 운용수익률 경쟁을 피할 없게 되어 있다. 시장관계자는 "경쟁은 좋지만 상업적 수익률 게임처럼 과열된다면 국가의 비상자금이자 최종 지불결제수단인 외환보유액 고유의 안전성이 훼손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