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올해 단속할 불공정행위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10~20% 늘려잡은 자의적인 수치를 적시해 공정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지난달 전경련이 "공정위가 경쟁 촉진이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의 경제력 집중 억제 기능에 치중해 시장에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야기된 공방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생뚱맞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겠다는 구체적 내용도 없이 시장담합 시정조치 39건,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141건, 신문판매 불공정행위 시정조치 240건, 신규 지주회사 설립·전환 3개사 등 성과목표를 한자리 숫자까지 제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책목표를 정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장을 감독하는 핵심 공적 기관의 태도가 ‘아니면 말고…’식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노 대통령도 불공정행위 적발건수를 성과지표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 법 위반 적발건수를 높이는 것보다 적발할 위법행위를 줄이는 것이 감독기관의 역할이 아니냐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엔 정경유착과 관치경제로 한정된 자원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돼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았으나 이제는 시장참여자들이 아주 복잡한 경기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구태의연한 업무보고를 질책하는 발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전경련이 주장하듯 공정위의 역할이 경쟁촉진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수익을 내면서도 인력·자금·판로의 3중고를 겪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강자를 때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거창한 명분을 찾기보다 현장의 약자를 보호하는 게 공정위의 진정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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