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보던 일본 정부 심각성 인식
시마네(島根)현의회의 조례 제정에 대한 한국의 반발을 ‘일과성’으로 가볍게 보던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가 대일본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 방침까지 밝히자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이 문제에 대해 "한국도 독도에 대한 양국의 입장차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이미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의 외교쟁점화를 꺼리는 한국 정부이니 만큼 의례적 반대를 표명하는 선에서 끝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독도 조례가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로 이어지면서 커다란 ‘역사문제’로 부풀어오르자 일본 정부도 상황변화를 깨달았다.
일본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올해 양국 관계의 기조와 시점이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에서 한일 합방 100주년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가 돼버렸다"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 내에서는 시마네 현의회 움직임이 포착됐을 때 영향력이 있는 자민당 정치인들을 통해 보다 빨리 말렸어야 한다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고 일본 신문들은 전한다.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대사의 "역사적·법적으로 일본 땅" 발언에 대해서도 외무성 주변에서는 "기자들의 유도 질문이었다고는 해도 외교관답게 ‘일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정도로 빠져나갔어야 한다"는 지적이 들린다.
그러나 일본 정부도 한국의 반발이 날이 갈수록 커지자 당장 구체적 수단을 마련하지는 못한 채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애를 쓰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만 거듭 강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17일 "한·일 우호 관계 발전과 감정적 갈등 극복에 염두를 두는 미래 지향적 자세로 이번 상황을 다뤄야 한다"며 한국에 반일 감정 극복을 주문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외무성 장관은 16일 국회에서 "100년이 지났다고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다"며 "역사를 깊이 받아들이고 싶다"고 한국을 의식한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이미 가결된 시마네현 조례를 정부가 폐기시킬 수단이 없고 4월초 교과서 검정발표, 8월 채택이 대기 중이라서 한동안 한국과의 외교적 냉각기간은 피하기 어렵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일본신문 사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 일본의 유력 일간지들은 시마네(島根)현의회의 ‘다케시마(竹島)의 날’조례 제정과 관련, 17일 일제히 사설을 게재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産經)신문은 조례 가결의 정당성을 역설하며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촉구했다. 아사히(朝日)와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양국간의 감정적 대결을 우려하며 상호 자제를 호소했으나, ‘다케시마가 일본땅’이라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다음은 각 사설의 요약.
◆ 요미우리신문
시마네 현의 조례는 ‘다케시마의 날’제정이 국민에게 영유권 문제를 계몽하기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 역사적으로, 또 국제법상으로도 고유의 영토인데도 대다수 일본인이 무관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영유권의 정당성에 대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해서, 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일본정부는 다케시마 문제를 계몽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교과서 기술과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히트곡을 통해서도 온 국민이 숙지하고 있는 한국과는 커다란 차이이다. 영토문제는 국가의 존엄이 걸린 기본 문제다. 한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한다는 무사안일주의로는 일본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
◆ 아사히신문
‘한국의 여러분께.’ 때마침 역사교과서 검정이 맞물려 이 문제를 식민지지배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여러분의 기분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세계의 사례를 보면 영토분쟁에 종지부를 찍는 유력한 수단은 전쟁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과 우리 일본인이 전쟁을 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여기서는 현실적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다툼은 이 정도로 하고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양국이 지혜를 짜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정부는 반세기 전부터 섬에 경비대를 설치하고 실효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업입니다. 일한 양국은 6년전 잠정수역을 설정해 공동 관리하는 묘안을 짜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일본인 어민이 한국어선에 압도돼 마음대로 조업할 수 없습니다. 이번 조례는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이 부분도 꼭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 마이니치신문
영유권문제는 국민감정을 자극하기 쉽다. 그럴수록 대립을 촉발시키는듯한 언동은 상호간에 억제할 필요가 있다.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대사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한국의 미디어는 "망언"이라고 반발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간 것이 아닌가. 일본의 대사가 일본정부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조례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에는 외교권이 없다. 현이 조례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우호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국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영유권문제의 구조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4월 검정결과가 나오는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발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국교정상화 이후 40년간 쌓아 온 우호관계에 상처를 내는 것은 양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 산케이신문
정부는 다케시마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인식해 시마네현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은 감정적으로만 반발할 뿐 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 것인가. 한국영토라는 주장에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절대적인 구속력이 없다 하더라도, 자국의 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일본이 제안에 응해야 할 것이다.
■ 시민단체·일부 학계 주장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 이후 신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신 한일어업협정은 일본이 1998년 일방적으로 구 한일어업협정(1965년 체결)을 파기함에 따라 1998년 11월 다시 체결돼 이듬해인 1999년 1월22일 발효됐다. 당시 양국은 독도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영유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추후 해결키로 했다. 결국 협정문에는 독도가 지명으로 표기되지 않고 좌표로만 표기됐다. 또 서쪽한계선은 울릉도 기점 12해리 떨어진 131도43분으로, 동방한계선은 동경 135도30분으로 정하고 양측이 각국 해안선에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그으면 겹치게 되는 부분을 중간수역으로 정해, 양국 어선들이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독도가 중간수역으로 들어가게 됐고 결국 이번 독도 영유권 분쟁의 씨앗이 됐다는 게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 어민 단체의 주장이다. 이들은 "신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의 독도 위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그 후 독도를 유인도화 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양국간 어업협정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시 협정 체결의 당사자였던 해양수산부는 "신 한일어업협정의 경우 어업을 위한 수역을 정한 것이지 영유권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 한일어업협정 15조는 이 협정이 어업에만 관련된 것이고 영유권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양부 관계자는 "2002년 헌법재판소에서도 신 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결정했다"며 "동해의 EEZ 경계 획정 문제는 한일 양국이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독도 영유권은 이 협상에서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어업협정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울릉도를 기점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우리 어선들이 일본쪽 해역에서 조업을 많이 했는데 무협정 상태로 갈 경우 일본측이 우리 어선을 나포하는 등 국가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어업협정 체결이 절실한 상태였다"며 "영유권과 관련이 없는 데도 독도 기점을 계속 주장했을 경우 협정 체결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울릉도를 기점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양부 관계자는 "신 한일어업협정은 독도 영유권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일본이 이를 연계하려는 게 문제"라며 "독도 영유권 문제는 EEZ 경제획정 협상에서 명확히 해야 하며 신 한일어업협정은 우리 어업에 피해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 파기를 선언할 수 있는 문제"라고 입장을 설명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