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통적인 외교는 ‘큰 지팡이를 갖고, 점잖게 걷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몸을 지키거나 괴한을 쫓기에 충분한 크고 강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신사의 모습에서 위엄과 멋을 떠올릴 수 있다. 큰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뛰어다니는 듯한 지금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한국 외교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독도ㆍ역사교과서 문제로 불거진 한일 양국의 외교 갈등이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가히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대 위기라 할 만하다. 한동안 잠자던 국민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고, 정부의 대일 자세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의 관련 발언에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대일 외교 원칙 천명에 이르렀다. 현재의 독도·역사교과서 문제가 직접적 계기지만 ‘장기간에 걸친 대일 관계의 전면적 재검토’에 바탕한 기본 노선의 수정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자발적 태도 변화에 기대를 걸었지만 ‘과거의 식민지 침탈과 궤를 같이 하는’ 움직임만 돌아왔다는 게 이유다.
정부의 이런 배신감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움직임을 견제하지 못한 일본 정부와 연립여당의 자세는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별개’라는 형식논리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방관이자 방조다. 연립내각 구성원들의 면면으로 보아 짐짓 군불을 땠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는 만악(萬惡)의 근원인 일본 정부와 연립여당, 특히 자민당에 대한 압박이자, 고개를 들고 있는 우파 국수주의 세력에 대한 경고이다. 실마리를 제공한 일본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국민감정의 본원적 정당성과 함께 이런 모든 정세 판단과 대응 조치의 정당성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다.
시마네현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보수 우경화나 자민당의 정치지배 모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독도 문제가 표면화한 것일까. 아니, 보다 정확히는 시마네현 의회를 잘 주물러 온 자민당 지도부가 왜 이번에는 손을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외교가에는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과거 모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못 알아들을 것이라 여겨 "이 녀석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야"라고 투덜거렸다. 나중에 녹음을 들은 국무부의 보고로 미국 대통령이 그 사실을 알았다. 한미 관계가 전과 같기 어려웠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교가 정치지도자끼리의 개인적 친소관계보다 당사국의 조건에 의해 좌우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개인적 관계도 정책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사소한 개인 감정이 국가 간의 대립이나 화해를 부르기도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지난해 가고시마 정상회담 당시 혼자 뜨거운 모래 속에 몸을 묻고 어색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전통 목욕 옷인 유카타를 입기 싫어해 모래 목욕 일정이 무산됐다. 그때 고이즈미 총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떠오르는 인물이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이다. 자민당 최대파벌의 대들보인 그는 시마네현 출신이다. 그를 총애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도 시마네현 출신이었다. 지역적 이해보다 대한 관계를 앞세운 다케시타 전 총리의 뜻은 아오키 회장에게도 이어졌다. 그런 그가 이번에 바뀌었다.
동북아 정세가 복잡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한국 외교의 위기는 대일 관계만이 아니다. 대미 관계도 흔들리고 있다. 막연한 기대가 쏠리고 있는 대중 관계도 잠복한 역사문제 등으로 보아 앞날을 점치기 어렵다.
정치 지도자들의 가벼운 판단과 언행으로 한국 외교가 조그만 지팡이를 마구 흔드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가 됐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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