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늘이 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을 그저 인간 평등의 슬로건 쯤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구도행을 병행하고 있는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오문환(45) 교수에게는 이 말이 진실이다.
20년 전 요가명상에 입문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인도 티베트 중국 등으로 스승과 진리를 찾아 구도행을 해온 오 교수는 뜻밖에 자신의 전공인 동학의 정치사상에서 깨달음의 길을 발견했다. 인도의 요가 스승에게서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동학에서 풀려버린 것이다. "수운 최제우는 하늘 마음이 사람 마음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한울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오 교수가 동학의 종교성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해월 최시형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였다. 그가 오랫동안 수련했던 요가명상과 동학의 철학적 구조가 의외로 유사했다. 이후 99년 천도교에 정식으로 입문했고, 화악산 수도원에서의 49일 기도 등 수도 과정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동학의 마음공부법을 쉽게 풀이한 ‘천지를 삼킨 물고기’(모시는사람들 발행)를 펴냈다. 그 동안 학술적 논의 차원에 그친 동학의 종교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책이다. "달이 푸른 강 속을 비추니 뒤집혀진 하늘과 작은 틈도 없고/ 고기가 흰 달빛을 삼키니 배 속에 하늘 땅이 밝더라."
의암 손병희의 시에서 따온 책의 제목처럼 그에게 동학은 ‘내 안의 하늘’을 찾아가는 마음공부의 길이다. 그가 말하는 동학의 핵심은 ‘수심정기(守心正氣)’이다. 사람은 마음에 하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지키고 올바로 하는 것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의 길흉화복과 성쇠고락은 마음에 따라 오가는 것이므로 내 마음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범인(凡人)은 오늘은 이런 마음, 내일은 저런 마음으로 오락가락 변덕이 심하지만, 성인은 언제나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오 교수는 동학의 종교적 측면을 불교 유교 노장사상 등 다른 종교, 사상들의 어휘를 동원해 풀이하고 있다. 모든 종교나 성현들의 가르침이 하나로 회통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만인을 하늘로 공경하는 마음에 의해서만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데,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이를 어짐(인·仁)이라 해도 좋고, 자비라 해도 좋고, 사랑이라 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끝으로 "도통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화순(和順)한데 있는 것"이라는 해월 최시형의 말을 인용하면서 동학에서의 깨달음은 가정을 떠난 고행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원만한 생활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두 딸의 아버지이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조화시키는게 그의 과제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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