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마네현 의회 방청기/반나절 본회의서 질의·토론도 안해 극우회원 방청석 독차지 "만세"불러
16일 오전 10시 3분 본회의 개회를 알리는 벨이 울리고 10시5분 의장이 입장해 개회선언을 했다.
시마네현 일반회계 예산과 농업시험장의 명칭변경에 따른 조례 개정안 등 27개 현 지사 제안 안건에 대한 토론과 표결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의사일정이 ‘의원 제출 제1호 의안: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표결로 다가가면 갈수록 회의장과 방청석의 공기는 더욱 긴장돼 갔다.
의회 경비원 10여명이 소리없이 방청석 사이 사이로 들어와 만약의 소동에 대비했다.
총무위원장인 이토하라 도쿠야스(絲原德康) 의원이 지사 안건 표결에 앞서 행한 상임위 활동 보고에서 "조례 제정은 국민 관심 제고가 목적으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조례안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 질의와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토하라 의원은 또 "조례는 영토문제를 빨리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상임위에서도 경북도와의 교류 중단 등 한일 우호관계를 우려하는 발언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오전 11시 32분 마침내 "찬성 의원은 기립하라"는 의장의 말에 따라 대부분의 의원이 잠깐 일어났다 앉은 뒤 "찬성 다수로 가결됐다"는 의장 선언이 나왔다.
일반 방청석을 독차지했던 극우단체 회원 40여명은 "시마네 현의회 만세", "한국군은 다케시마에서 꺼져라"는 환호성을 올린 뒤 썰물처럼 회의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총 의석 38석에서 몸이 아파 결석한 1명과 의장을 제외한 표결참석 의원 36명 중 자민당 등 33명이 찬성, 민주당 2명 반대, 공산당 1명 기권이었다.
본회의는 그 뒤로도 폐회 기간 중의 활동을 논의한 뒤 낮 12시 8분 폐회했다.
독도 조례안은 반나절 동안의 본회의에서 질의, 토론도 없이 의원들이 수 초동안 한번 일어났다가 앉는 것으로 가결돼 버린 것이다.
마쓰에=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현의회 주변 이모저모/ 군복차림 100여명 "독도 탈환" 시위 서울시의원 혈서 쓰려다 격리당해
전날밤 내린 비가 그치고 화창하게 개인 마쓰에시는 16일 시마네 현의회 안팎에서만 하루종일 소동이 이어졌다.
‘일본우국용사회’, ‘일본황도동지회’ 등 일본 전국의 10여개 극우단체 회원 100여명이 오전 8시30분부터 확성기가 달린 선전차량 10여대를 타고 현의회 앞에 몰려들었다. 시마네현 경찰은 새벽부터 현의회와 현청사 주변에 수백여명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각종 군복차림의 이들은 "일본 영토 다케시마 탈환" 등 깃발과 일장기를 들고 잠시 시위한 뒤 오전 9시 시작된 의회 일반 방청객 접수와 추첨에서 미리 50석 남짓한 방청석을 거의 다 차지했다.
이들은 "언론의 카메라가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 질서를 지키라"는 지휘자들의 지시에 따라 별다른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으나 군복 차림의 거한들로 의회 건물은 순식간에 으스스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들이 입장한 직후 현의회 의장 면담을 요청하던 독도향우회 최재익 회장(서울시의원)이 혈서를 쓰기 위해 가방에서 문방구용 칼을 꺼내다가 일본 경찰에 저지당한 뒤 의회 사무국 회의실에 격리됐다. 최 회장은 결국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 채 폐회 후 기자회견에서 "이런다고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역사와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며 현의회를 비난했다.
현 의회 사무국은 한국 기자 30여명 전원에게 최우선으로 방청석을 배정했고 나머지 자리를 일본 기자들과 극우단체 회원들, 현청 관계자, 사복 경찰관 등이 차지해 일반인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현청 직원들은 "시마네 현이 생긴 뒤 이렇게 많은 기자와 경찰관, 극우단체 회원은 처음 본다"고 수근대기도 했다. 방청 기회를 얻지 못한 극우단체 회원들은 본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의회 건물 주변을 돌며 "시마네 의회 힘내라" "일본의 주권과 영토를 지켜라"는 등 구호를 외쳐댔고 선전차량들은 시내를 배회하며 옛 일본 군가를 틀어댔다.
현 의회 바로 옆의 현청사에 들렀던 일부 시민들은 신기하다는 듯 방송중계 차량과 극우단체 차량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쓰에=신윤석특파원
■ "반대"표명 고무로 의원/ "국가차원서 다뤄야 할 일 한일친선 붕괴 막고 싶어"
조례안 처리 과정에서 일관되게 ‘불찬성’(반대) 입장을 견지했던 민주당 고무로 히사아키(小室壽明·사진) 의원은 "앞으로 시마네현과 경상북도, 한국과 일본의 우호, 친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반대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영유권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쌓아온 한일 교류와 우호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었다. 조례 제정으로 가시가 돋고 바늘이 선 관계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오늘 표결 전에 그런 반대 토론을 왜 나서서 하지 않았나.
"조례안 상정과 상임위원회 표결 때 충분히 의견을 밝혔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영유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례 찬성 의원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있다. 오늘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반대 토론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미 조례는 가결됐는데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지방의회가 다루는 것은 넓은 강을 메우겠다고 돌을 던지는 격이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한일 친선의 붕괴는 막고 싶다. 한국측에서도 많은 의원들이 이런 걱정은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일조일석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한일간에 여러 레벨에서 서로 대화할 장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어찌됐건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
마쓰에=신윤석특파원
■ '조례안 가결' 반응/ 日정부 "지자체 일…무간섭" 되풀이
시네마(島根)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일 양국의 우호관계가 훼손돼서는 안된다"면서도"지방자치단체의 일이라 중앙정부가 조례 제정을 막을 수는 없다"며 기존의 ‘무간섭’입장을 되풀이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16일 "예전부터 (독도에 대해) 한국은 한국 영토, 일본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며 대립해 왔다"며 "지금은 감정적 대립이 있지만 한일우호를 바탕으로 그에 좌우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시마네현 의회도 국제관계에 대해 알고 있을 것으로 보지만 지방자치의 범위 내에서 하는 일이라 정부가 조례 제정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며 한일우정의 해를 통한 양국 우호관계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미타 노부요시(澄田信義) 시마네현 지사는 "북방영토에 비해 국민의 인지도가 낮은 가운데 조례가 제정돼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계발하는 의의가 있다"며 "이를 계기로 국가가 영토 확립에 적극 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항 조치를 내놓을 예정이어서 한일관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케이 신문은 칼럼을 통해"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는 중앙 정부 대신 시마네현이 일본의 영토를 한국이 불법 점령했다는 사실을 고발한 것"이라며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주요 외신과 신문들은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국의 반일감정이 폭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AP 통신은"황금어장으로 둘러싸인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과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강경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한국정부는 일본과의 우호 관계보다도 독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으며, 영국의 가디언지는 "한일 우정의 해를 통해 경제와 문화 분야의 관계 증진을 모색했던 한국이 일본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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