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아시아에 영토 분쟁과 관련된 긴장이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일본이 있다.
동북아 영토 분쟁은 수 십년씩 묵은 문제. 최근 중국 대만의 민족주의도 격렬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갈등을 한층 고조시키는 건 주로 일본 정부의 접근법 변화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예전에는 극우집단이 소동을 일으키고 정부는 뒷전에서 일을 진행시켰지만,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주변국을 자극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과 우파 정치인의 발언권 확대 등 일본의 전반적 우경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는 독도 영유권 강변으로 사단을 일으키고, 중국 대만과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군도) 영유권 문제와 동중국해 춘샤오 해저가스전·오키노도리시마(沖ノ鳥島)암초 등을 둘러싼 배타적경제수역(EEZ)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러시아와는 이투르프(일본명 에토로후·擇捉)섬 등 북방 4개섬 반환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다.
여기엔 군국주의 부활의 음울한 그림자도 엿보인다. 중국이 자국 영유권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는 일본의 오키노도리시마 유인화 및 EEZ 확장 시도에 대해 번번이 발목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EEZ를 넓히려는 경제적 목적 이면엔 영토 확장을 위한 치밀한 계획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청년단 기관지 ‘중국청년보’는 최근 "일본이 독도에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독도에 대한 결정이 북방 4개섬과 연동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과 한중러 간 영유권 분쟁이 서로 연결돼 있어 일본이 하나를 돌파해 다른 문제에 확대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일본의 최근 행보가 미일 동맹의 강화와 밀접히 맞물려 있다는데 있다. 일본이 앞으로 영유권 분쟁에서 목소리를 더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선 "일본 뒤에는 미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미국이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홍석우기자
■ 남쿠릴열도/ 日"4개섬 반환" 러 "2개만" 전략가치 높아 평화조약 ‘걸림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됐지만 일본과 옛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아직도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관계 정상화 움직임이 남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라는 암초에 번번이 좌초했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 동북쪽의 구나시리 에토로후 시코탄 하보마이(이상 일본명) 4개 섬은 2차 대전 뒤 소련이 점령했다.
2차 대전 중 연합국간 얄타협약에는 구나시리 에토로후만 귀속하도록 했지만 소련은 시코탄과 하보마이까지 점령했다. 소련은 1951년 미일 강화조약 중 ‘쿠릴열도의 모든 권리와 청구권 포기’를 들어 4개섬 영유가 합법화됐다는 입장이었지만, 56년 불법점령 시비가 있는 하보마이 시코탄은 반환할 의사를 밝혔다.
냉전 해체 뒤 러시아는 한때 일본의 경제 지원을 노려 4개섬을 반환할 것처럼 운을 띄웠지만, 최근엔 다시 2개섬 반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도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만큼 양측간 접점을 찾기가 극히 어렵다.
이 문제는 독도와도 연결돼 있다. 러시아가 구나시리 에토로후까지 넘겨주면, 일본이 46년 연합군최고사령부지령 677호 등 독도와 이들 4개섬을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문서들의 무효화를 강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준현기자
■ 센카쿠열도/ 석유부존 확인 후 첨예 갈등 "중국인이 발견" "오키나와 소속" 대립
대만 북동쪽 170km 지점에 5개의 섬으로 구성된 센카쿠(尖閣) 열도는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을 다투는 분쟁지이다. 그 중 독도보다 큰 최대 섬인 우오쯔리지마(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분란의 핵심이다.
중국의 자국영토 주장에 맞서 일본은 섬의 영유권을 기정사실화 하기위해 소속을 오키나와(沖繩)현으로 하고 등대까지 세웠다. 그러나 중국을 의식해 일반인의 방문은 제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534년 중국인이 발견한 이 섬들이 1895년 청일전쟁 이후 대만과 함께 일본으로 넘겨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 열도가 일찍이 오키나와 소속이었고, 중국의 1534년설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1951년 미일 강화조약에 오키나와와 함께 자국의 영토임을 명시했고, 55년 중국정부가 간행한 지도에도 일본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중국이 뒤늦게 영유권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열도가 양국의 관심사가 된 것은 70년대 근해에서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사실이 확인되면서부터. 지난해 3월 중국인 7명이 이 섬에 상륙하자 일본이 해안경비대를 동원해 체포하는 강수를 두면서 양국간 긴장의 수위가 높아졌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오키노도리/ 높이 70㎝ 암초를 "섬" 우겨 日본토보다 넓은 경제수역 설정
일본정부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740km 떨어진 오키노도리라는 태평양의 조그만 암초에 1989~93년 대대적인 콘크리트 보강공사를 펼쳤다.
가로 2m, 세로 5m 해면에서 높이 70cm로 파도가 몰아치면 잠기는 두 개의 바윗돌이 공사를 거치면서 지름 50m, 높이 3m의 원형섬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오키노도리에 ‘섬’이라는 의미의 ‘시마’를 붙여 일본의 최남단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1543년 스페인의 산후안호가 발견했고, 일본은 1931년 이 곳을 영토에 편입시켰다. 1951년 미일강화조약에 따라 오가사와라 제도가 미국 신탁통치를 받게 되면서 함께 편입되었다가 68년 일본에 귀속됐다.
일본정부가 배로 자재를 옮기고 해상에서 작업하는 난공사를 벌이면서까지 오키노도리시마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때문이다. 일본은 77년 12해리의 영해와 200해리의 경제수역을 설정했는데, 오키노도리시마 주변 200해리를 설정하면 일본국토면적보다 큰 40만㎢로 막대한 어업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오키노도리시마는 단지 암초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국제해양법에서 암초는 경제수역 설정의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군사·어업상의 이유로 제기한 주장은 일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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