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멀미보다 배멀미를 더 견디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마사지 기구를 오래 사용하면 왜 피부가 가렵게 느껴지는 걸까. 고급 승용차를 타면 멀미가 덜 나는 것은 그저 기분 때문일까. 이처럼 일상 생활의 기분을 은근히 좌우하는 주범 중 하나가 진동이다.
진동은 ‘물리량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운동 에너지’로 정의된다. 지진부터 파도 굴착기 휴대폰 등을 통해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인체는 진동이 가해지면 일단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또 멀미할 때처럼 심장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며 두통이 생기는 등 다양한 신체적 ‘부작용’도 따라온다.
굴착 드릴 등 반복되는 강한 진동은 몸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시키기도 한다. 땅 파는 드릴을 자주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종종 손 끝 세포가 죽어 하얗게 썩어 들어가는 ‘흰 손가락 증후군’을 경험한다. 돌이킬 수 없이 손상이 심해지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이 병의 원인은 바로 ‘반복되는 강한 진동’이다.
바이브레이터(vibrator·진동기) 증후군, 혈관경련 증후군 등 이와 유사한 질병이 속속 발표되면서 진동 관련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강하고 빠른 진동에 쉽게 손상을 입는다. 반면 몸이 자각할 수 있는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 등 불쾌감을 유발하는 진동의 주파수대는 의외로 낮은 50㎐ 이하로 조사됐다. 신체 부위별 영향도 달라 머리에 진동이 오면 시력이 떨어지고 손에 가해지는 진동은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간이 가장 ‘기분 나쁘게’ 느끼기 때문에 자동차나 선박 엔진 설계 등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주파수는 3~8㎐로 꼽힌다. 1㎐는 1초당 한 번, 3㎐는 초당 세 번의 진동이 오는 것을 뜻한다. 파도는 대표적인 3㎐대의 진동으로, 사람들이 배멀미를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멀미가 괴로운 또 한가지 이유는 3㎐ 진동이 위(胃)의 고유 진동 주파수와 거의 비슷해 공진(共振)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고유한 진동을 갖고 있다. 인간의 몸 역시 마찬가지며 각 장기와 부위별로 주파수가 다르다. 땅과 붙어 있는 발 쪽의 주파수가 가장 낮고(가장 느리게 떨리고) 위로 갈수록 주파수는 높아진다. 고유 진동 주파수가 자신과 같은 주파수의 진동과 만나면 진폭이 두 배로 커지는 공진 현상을 일으킨다. 배만 타면 유난히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자기 신체의 고유 진동 주파수가 파도 진동 주파수와 가깝다는 증거다.
국제표준기구는 1974년 진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화하기 위해 진동과 관련한 여러 요소들을 모아 ‘ISO2631’을 발표했다. 이 기준은 진동의 주파수 가속도 방향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 관련 기기와 자동차 등의 제작에 활용토록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국표준연구원 생활계측그룹 박세진 박사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진동에 대한 반응을 추적 연구하고 있다. 그는 영국 ‘링 다이내믹 시스템’이 제작한 진동 의자를 사용, 100여명의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진동 증가에 따른 반응을 심장 박동, 혈액 속 호르몬 수치, 심전도 등 다각도로 측정했다. 그 결과 서양인 기준으로 작성된 ISO2631에 비해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인은 진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박 박사는 "지금까지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으나 앞으로 다양한 연령대를 연구에 포함시킬 예정"이라며 "진동에 따른 인체영향 평가 지표가 완성되면 한국인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또 "인체는 주파수 크기와 관계 없이 일단 진동에 노출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티솔’을 분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트레스와 진동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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