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지난 1년 동안 더 부자가 되었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재산이 늘어난 국회의원은 201명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68.4%나 된다. 65명은 1억원 이상이나 늘어났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고위 법관은 다섯 사람 가운데 네 사람 꼴로 재산이 늘었다.
고위 공직자 가운데서는 경제부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주로 부동산에서 재미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김세호 건설교통부 차관은 부인 소유의 땅이 택지개발지구에 수용되는 바람에 많은 차익을 남겼다. 부인 소유의 땅을 팔아 많은 돈을 벌어 국무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재산을 불린 것으로 나타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끝내 물러나고 말았다.
또 다른 재산증식수단은 주식 거래인데,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3명 가운데 1명이 주식을 보유하거나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장차관급 재산공개대상자 74명 가운데 재산현황이 파악된 장차관급 공직자는 66명인데, 이 가운데 26명(본인,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이 보유, 혹은 거래한 것을 모두 포함)이 현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주식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무상 주식관련정보 접근의 가능성이 높고, 주식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에도 직접 참가하고 있다.
또 금융감독기관 고위공직자 중 상당수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금융감독기관의 재산공개대상자 26명 가운데 6명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가운데에는 재직 중에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상당의 주식을 거래한 사람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면서 백지신탁의 대상을 재산공개대상자의 모든 주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직무관련성의 범위가 확대되며, 재산공개대상자인 고위공직자는 자신의 현 직무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정책사안이라도 정보를 얻고, 국무회의, 부처 협의, 법안심사 등을 통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들이 정부가 백지신탁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식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반성해야 한다.
금융감독기관의 공직자는 주식시장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주식시장을 직접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주식 보유 자체만으로도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이해충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식거래를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유주식의 매각이나 백지신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이미 백지신탁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2월 임시국회에서는 이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뒤로 미뤄졌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주식보유로 인한 부당한 재산 증식과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백지신탁제도를 포함한 전면적인 이해충돌 방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백지신탁제는 공직자들이 직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해 재산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이 갖고 있는 일정액 이상의 주식을 팔거나 은행 등에 처분을 위임하고 일정기간 그 운용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캐나다 등이 백지신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백지신탁제도를 제대로 도입하려면 백지신탁대상자를 재산등록대상자로 해야 한다. 직계 존비속 고지거부권은 삭제하고, 백지신탁 하한액도 낮춰야 한다. 선출직이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되며, 직무관련성 판단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 퇴직자취업제한도 강화되어야 한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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