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피지 않는다. 무리를 지어 한꺼번에 ‘터진다.’ 봄꽃놀이는 꽃불이 터지는 축제이다. 그래서 화려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맵싸한 꽃샘추위가 몇 차례 찾아왔지만 이미 축제는 시작됐다. 남쪽 섬진강을 따라 이번 주말 꽃불이 절정을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 주인공은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이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꽃동네, 매화마을과 산수유마을을 찾는다.
■ 광양 매화마을/ 흰색으로 뒤덮인 10만평 ‘와~’
동백이 겨울을 보내는 꽃이라면 매화는 봄을 부르는 꽃이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을 때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지만 매화의 절정기는 언제나 완연한 봄이다. 섬진강은 경남 하동군과 전남 광양시를 경계로 유유히 흐른다. 북쪽이 하동, 남쪽이 광양이다. 다압면은 섬진강을 따라 28㎞에 걸쳐 펼쳐진다. 길 따라 어김없이 매화꽃이 핀다. 섬진강다리에서 강을 따라 이어지는 861번지방도는 그래서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로 손꼽힌다.
매화마을은 그 길 중간지점에 있다.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매화로 워낙 유명해 진 터라 몇 년 전부터 아예 매화마을로 이름을 바꿨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이 온통 매화나무다. 만개시기가 되면 마을 전체는 흰색 꽃잎으로 뒤덮인다. 좀더 운치 있는 풍광을 보기 위해서는 마을 뒷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흰 눈이 나무 위에 내린 듯하다. 흰 매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혹 홍매화, 청매화도 있다. 매화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는 예술에 가깝다.
매화마을 관광의 절정은 청매실농원(061-772-4066)이다. 마을어귀에서 500c가량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입구에서부터 화사한 매화꽃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10만평이 넘는 언덕에 심어진 매화꽃의 절경에 놀란다. 이 모든 것이 농원의 주인인 홍쌍리씨라는 한 여장부가 일궈낸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란다.
매화와 더불어 농원 최대의 볼거리는 장독대이다. 매실을 담기 위해 하나 둘 모은 장독대가 수천개에 이른다. 언덕 위에 오르면 가지런히 정렬된 장독대 너머로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품이다. ‘농사는 작품이다’라는 홍씨의 평소 지론이 그대로 녹아있다. 농원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이뿐 만이 아니다. 농원뒤에 심어진 대나무숲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소리를 낸다. 매화에 취하고 장독대에 취하고 대나무에 취한다.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을 이 곳에서 찍었다. 매화나무가 온통 흰색으로 뒤덮을 때 땅에서는 푸른 보리가 피어난다. 색채의 대비가 어찌 이리도 절묘할까.
■ 구례 산수유마을/ 동화속 노란 물감의 나라에 온듯
매화가 흰 구름을 만들 때 산수유꽃이 뒤를 따른다. 이번엔 노란 구름이다. 매화마을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면 전남 구례군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끼고 있는 고장이다. 고속도로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잘 닦인 19번 국도(전주-광양 산업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에 산동면이 있다. 먼저 지리산온천관광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관광특구로 지정돼있다.
산수유꽃으로 유명한 산동면 상위마을은 이 곳에서 4㎞정도 떨어져있다. 마을 위에 지리산 만복대가 버티고 있다. 이 마을에 산동이 된 것도 산수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산둥성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심었기 때문에 이 같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생김새가 중국의 촉나라 대추와 비슷한데다 신맛이 두드러져 촉산초(蜀散草)라고도 불린다.
산수유는 다년생 나무로 3월초에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이 채 녹기도 전에 성급한 봄소식을 전한다. 보통 3월 중순이면 활짝 핀 꽃을 볼 수 있다. 올 봄은 날씨가 변덕스러워 쉽게 개화기를 점칠 수 없었는데 이제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마을전체는 노란 물감을 들인 동화속 나라로 바뀐다. 산수유꽃은 겉꽃잎과 속꽃잎 등 두 차례에 걸쳐 꽃잎이 열리기 때문에 비교적 오래 감상할 수 있다. 만복대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에 군집을 이루고 있고, 마을 골목 곳곳에 홀로 피어있는 꽃도 분위기가 있다.
구례군청은 주말인 19일부 27일까지 산수유축제를 연다. 땅에 핀 꽃불로도 모자라 진짜 불꽃놀이를 여는 등 많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꽃구경 후 지리산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피로를 푸는 것은 보너스이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7.
권오현기자 koh@hk.co.kr
■ 체증 피해 야간열차 타볼만
수도권에서 출발, 전남 광양과 구례로 가려면 대략 3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면으로 가다가 옥곡IC에서 빠진다. 2번국도와 만나 하동 섬진강다리앞에서 861번도로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매화마을과 만난다. 매화마을에서 861번도로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간다.
강 건너에 길이 하나 더 있는 데 19번 국도이다. 화개장터 바로 앞으로 새로 난 남도대교를 건너 19번 국도와 합류, 계속 북상하면 지리산온천관광지가 있는 산동마을이 나온다. 온천관광지에서 4㎞가량 떨어진 언덕에 산수유마을인 상위마을이 있다.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타고 함양IC에서 88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남원IC에서 나온 뒤 19번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산동마을을 먼저 만난다. 산수화를 먼저 본 뒤 매화를 보는 여정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갈아탄 뒤 전주IC에서 빠져 19번 국도를 타면 남원-구례에 닿는다.
중요한 것은 이맘때면 극심한 교통체증이 생긴다는 것. 전국의 관광버스가 총 집합한 느낌을 준다. 주차장을 넓히고 일방통행을 시키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방법은 대중교통 이용이다. 서울에서 열차, 버스 등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밤 11시 35분에 출발, 다음날 오전 6시22분 하동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를 타는 것은 어떨까. 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 광양시청 교통행정과 (061)797-2366, 구례구역 (061)782-7788, 구례공용터미널 (061)782-3941.
■ 갯내음 재첩국 ‘캬~좋다’
섬진강에 갔다면 꼭 먹어야 할 것이 있다. 재첩국과 참게이다. 재첩은 민물조개 작은 것은 와이셔츠 단추만 하고 큰 것은 어른 엄지손톱만하다. 소금으로만 간을 해 푹 끓이는 데, 이 것이 해장국 1호로 꼽히는 재첩국이다. 처음 먹는 사람은 갯내음이 나 조금 역한 기운을 느끼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뚝배기를 잡고 들이켠다. 섬진강변에서 쉽게 재첩국집을 찾을 수 있다. 참게는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는 게. 탕으로 끓이거나 간장게장을 담가 먹는다.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얼큰한 참게탕이나 밥도둑 참게장을 맛보면 행복한 여행이 보장된다. 그 밖에 대나무통에 지은 밥에 30가지에 가까운 반찬을 내놓는 화엄사앞 지리산대통밥(061-783-0997), 산수유마을에 있는 지리산멧돼지관광농원(783-1793), 남촌민속가든 (783-0388), 백제회관 (783-2867), 전주식당 (783-3908) 등이 남도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식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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