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개성공단에 온 지 100일이 됐다. 처음에는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환율 자료를 받기 위해 유일하게 전화가 부설된 현대아산 개성사무소까지 3km를 매일 왕복해야 했다. 2주 동안 가족에게 안부 전화 한번 못했다. 10번 이상 통화를 시도해야 겨우 1번 연결될 수준이지만 이제는 지점까지 전화선이 설치됐다. 서울에서 송금한 달러화를 5분 뒤 북한에서 현금으로 찾을 수 있게 됐다. 병원과 편의점도 생겼다. 장족의 발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언어 차이 때문에 발생한 에피소드다.
현대아산에서 일하는 북한여성근로자 신평화씨와의 첫 대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밝게 웃으며)일 없습네다." "(놀라며)일 없다뇨?" "(미소를 지으며)스물셋입네다."
아니, "일 없다"며 곧바로 나이를 털어놓는 까닭은 무엇인가. "일 없다"가 "괜찮다"는 의미라는 걸 알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여기서 ‘환율 시세’는 ‘환자 시세’이며 ‘예금 계좌’는 ‘돈자리’ 다. ‘다이어트’는 ‘몸 까기’, ‘스타킹’은 ‘유리양말’ 이다. 지금은 북한말이 정겹게 들리고 북한 사람들에 대해 ‘같은 김치를 먹고 같은 얼굴을 가진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
화장품 선물조차 거부하던 우리 지점의 북한 여직원과도 이제는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성대한 지점 개점식 행사를 허락해주고 개성시내 자남산 여관에서의 오찬을 마련해준 북한측 참사 선생과는 "우리은행은 복받은 은행"이라는 농담까지 주고받는다.
최근에는 북한측 고위인사와 근로자들도 스스럼없이 지점을 찾는다. 지점이 복덕방 역할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유일하게 남한 냄새를 풍기는 곳이라 관광명물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각 지점에서 책을 기증 받아 이동문고를 운영하고 싶다. 그러면 더 많은 근로자들이 우리 지점을 찾아 정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정리=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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