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이 시작되는 곳에 특별한 집이 있다. 창문에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 까막딱따구리네 집ㆍ전시관’이라는 안내 글이 붙어있다. 훈훈한 인상의 주인 정봉용(65)씨는 누가 들르든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면서 온 집안을 빼곡히 채운 새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는 명함도 ‘삼각산 까막딱따구리 지킴이’로 새겼다.
그는 요즘 한창 들떠있다. “까막딱따구리 번식에 성공하면 녀석들 기념비를 세워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강북구청장 등 여러 분들이 도와줘 두 달쯤 후에 덕성여대 앞 솔밭공원에 삼각산 까막딱따구리 기념비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2000년 4월 천연기념물 제242호 까막딱따구리를 등산로에서 처음 발견해 카메라에 포착한 주인공이다. 우연히 발견, 64일이나 텐트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배달해주는 도시락과 건빵을 먹어가며 잠복해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이 사진은 1930년대 이후 서울 근교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라며 조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언론에도 대서특필됐다. 현재 까막딱따구리가 삼각산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지내는지 아는 이도 그 뿐이다. “총 25마리가 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 죽게 됩니다. 그러면 아마 나도 죽을 겁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하루 두 차례, 새벽 4시와 오후 5시에 산에 올라 녀석들이 무사히 있는 걸 봐야 안심이 된다. 물론 누구도 뒤를 쫓게 하지 않는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나무 밑에 인분을 뿌려 등산객들의 접근을 막았다. 재작년엔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빼앗는 청솔모를 쫓다가 넘어져 뇌진탕으로 크게 고생하기도 했다.
“녀석들이 산중에서 ‘째욱~ 째욱~’우는 소리도 제 귀에 다 들립니다. 가만히 녀석들의 일상을 지켜보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새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바라보는 내가 행복하구나 하고 느끼지요.”
술을 끊기 위해 등산을 시작하면서 수준급 사진가까지 됐다. 15년 넘게 북한산 대동문 광장에 무작정 사진을 늘어놓고 전시회를 열어왔다. 특별한 수입도 없이 순전히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다. 지난해 10월초에는 까막딱따구리 둥지 앞에 가족들을 모아놓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죽으면 화장해 둥지 밑에 뿌려서 새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외손녀, 외손자들은 얼떨떨했지만 서명을 해야 했다.
‘정봉용의 까막딱따구리 일지’에는 6년째 매일 분단위로 녀석들의 움직임이 기록돼 있다. 캠코더로 촬영한 테이프가 벌써 201개째다. “좋은 분들에게 후원만 받기도 죄송해서 나도 빨리 취직이라도 해서 보태야 할 텐데…. 나 죽으면 이 많은 자료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까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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