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살면서 타이타닉호의 침몰원인을 설명해야 할 상황이 올 확률은? 혹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 연설을 외우고 있어야 할 상황을 맞을 확률은? 이제 일확천금을 위해서는 로또 대신 퀴즈쇼에 도전해 볼 일이다.
MBC ‘퀴즈가 좋다’의 후속 ‘퀴즈의 힘’, SBS ‘최강남녀’ 등 요즘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퀴즈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게다가 모두 현금을 우승상품으로 내걸고 있으니, 이만큼 일확천금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프로그램도 없을 듯하다.
물론 퀴즈를 풀려면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력하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승자는 실력만큼 운도 좋은 단 몇 명뿐이다. 내가 평소 웃고 떠들며 흘려 들었던 상식들이 때론 나의 운명을 결정할 때 엇갈리는 희비(喜悲)가 된다. 퀴즈쇼는 그 형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퀴즈쇼의 관건은 그 ‘운명의 드라마’를 무엇으로 만들어내느냐는 것이다.
‘최강남녀’는 그것을 ‘돈’을 통해 만들어낸다. 결국 중요한 건 상금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점수가 높은 이성 참가자와 짝을 이뤄야 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바꿔야 한다. 어떤 출연자는 의리를 지킨다며 지명한 파트너를 그대로 끌고 가지만, 어떤 출연자는 단 몇 점 때문에 파트너를 바꾼다.
퀴즈쇼에 리얼리티쇼를 결합한 프로그램답게, ‘최강남녀’는 돈에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대신 파트너를 바꾸거나 문제를 푸는 방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지지 않아 문제풀이 자체가 주는 긴장감은 떨어진다.
반면 ‘퀴즈의 힘’은 상금 대신 구성 자체에 내재한 ‘영웅 만들기’가 드라마 재료가 된다. 물론 출연자들의 목표는 상금이다. 하지만 ‘퀴즈의 힘’은 그 중 절반을 모교 장학금으로 내놓는다는 명분과, 나머지를 7명이 나눠 가져야 하는 규칙으로 상금의 힘을 희석한 뒤, 출연자 한 명이 1:1 서든데스 방식으로 경우에 따라 상대팀 전부를 이길 수 있도록 해 문제를 풀 때마다 영웅을 탄생시킨다. 단 한 문제라도 틀리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그러나 살아 남으면 그 순간만큼은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상금을 받는다는 기쁨 이전에 승리자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최강남녀’가 퀴즈쇼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극단적으로 살렸다면, ‘퀴즈의 힘’은 원한다면 누구나 몇 초쯤은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는 매스 미디어의 힘을 보여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돈인가 명예인가. 사람들은 각자 욕망을 가지고 숱한 노력을 통해 목표에 접근한다. 그리고 노력만 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우연과 필연이 겹친 무엇이다. 요즘 퀴즈쇼가 새삼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바로 이런 세상의 이치를 한 시간 안에 농축해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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