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동남아 말라카 해협의 해적떼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말라카 해협의 지형적 특성을 악용한 해적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제 테러단체들이 해적들을 테러에 이용하려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말라카 해협은 도적굴에서 바다를 통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하는 국제안보 취약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4일 밤 말레이시아 페낭섬 해역에서 바지선을 끌고 가던 일본 예인선이 10여명의 무장 해적단의 습격을 받아 일본인 2명, 필리핀인 1명 등 선원 3명이 납치됐다. 일본 정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관련국과 수사 공조에 나섰으나, 해적들의 근거지와 배후 등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앞서 12일 밤에는 40여명의 해적들이 이 해협에서 메탄가스를 싣고 가던 인도네시아 선적 유조선을 공격, 선장과 수석 엔지니어를 억류했다. 인도네시아 아체주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인 ‘자유아체운동(FAM)’ 대원들이 배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몸값을 노린 단순범행인지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질은 지난해말 남아시아를 휩쓴 쓰나미와 이에 따른 미군 파병으로 수그러 들었다 해적들이 근거지를 복구하면서 다시 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과 국제 테러집단과의 연계 가능성이다. 총 길이 900㎞의 말라카 해협은 평균 수심이 50c에 불과하고 폭이 좁아 대형 유조선 한 대만 폭파시켜도 수송로가 봉쇄될 수 있는 취약한 요건을 갖고 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최단 수송로인 이 해협은 그러나 세계 교역화물의 3분의 1, 석유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실어나르는 해상 요충로여서 테러집단에게는 최적의 먹이감이다.
전문가들은 테러조직이 세계경제를 뒤흔들 목적으로 초대형 유조선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하는 테러조직 ‘제마 이슬라미야(JI)’도 아체 반군과 연계돼 있다는 분석이다. JI는 2003년 인도네시아 발리의 나이트클럽에 폭탄테러를 감행해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알 카에다 방계 조직이다.
국제 해상범죄 전문가인 존 버닛은 "9·11 테러범들이 항공기 조종훈련을 받은 것처럼 테러집단이 선박운항법을 익히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2003년 3월 이 해협을 운항하던 화학제품 운반선에 들이닥친 해적들이 약탈보다는 항해법에 관심을 보이며 기술적 내용이 담긴 서류가방을 훔쳐간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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