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명 대 4만320명.’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상대가 되겠느냐’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이 최근 벌어졌다. 183명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말 파악한 서울 시내 중·고교 폭력조직 가담 학생이고 4만명은 일진회 실상을 폭로한 서울 J고 정세영 교사가 추정한 숫자다. 정 교사의 셈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해도 너무 큰 차이다. 왜 이럴까.
서울 강북 A고의 B교사는 "중학교에서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할 때 1학년 한 학생을 조사했더니 고구마 줄기처럼 고3학생까지 조직도와 상납고리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대충 학교 차원에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폭력조직을) 밝혀내면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게 학교 측 반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생활지도와 관련한 근무평정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일선 학교에서 일진회 등 학교폭력 문제가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감추려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애쓰는 교사도 많고, 학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교육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간 각 학교의 접근법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학교폭력 자진신고 기간이 시작됐지만 교사들은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교의 이런 잘못된 접근법이 학생들에게 "학교에 말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불신감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더 이상 교사만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덮어뒀던 정화조 뚜껑을 여는 일은 학교 측에서 도와줘야 한다. 비록 악취가 나더라도 말이다.
진성훈 사회부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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